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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17. 2023

애매한 자의 변명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된 분이 책 선물을 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무스 평전>이었다.


에라스무스는 누구인가? 간단말하면 종교개혁으로 피바람이 불던 중세 유럽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그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끝까지 중립으로 남았던 사람이다. 한쪽 편을 들었으면 쉽게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애매한 입장의 대가는 쓸쓸하고 비참한 말로였다.


그분이 이 책을 선물한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도 그처럼 자유로운 중립을 자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네요"이니 대부분은 나의 이러한 성향을 쉽게 알아차리곤 한다. 아주 가끔 일생일대의 확신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말은 '99%'가 최대치다. 확신하다를 뜻하는 상투어인 '100%'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쓰지 않고 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이런 나에 대해 몇몇 분들은 안타까움을 표하곤 한다. 애매하면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고. 다수의 사람은 확실한 답을 원하고 분명한 입장을 지지한다고. 선과 악이 분명하고 선이 악을 징벌하는 참교육 콘텐츠는 늘 성공하지만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다면적인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외면받는다고 등등.


다 맞는 말이다. 가수 나훈아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팬과 안티 둘다를 미치게 만든다. 너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다.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좋아한다.



나훈아 씨가 말한 '슈퍼스타'의 전제조건은 애매함이 아닌 분명함일 것이다. 물론 내가 슈퍼스타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지향할 수 없기 때문에라고 읽어도 좋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세 가지의 이유로 남들이 보기에 '애매함'을 유지하고 있다.



1. 내가 틀릴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 아니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 인간은 오랜 기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들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니 틀렸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틀리지 않는 유일한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오늘의 답이 내일의 오답이 될 수 있다.


마케팅에서 4대 매체라 부르는 것이 있다. 바로 TV, 라디오, 신문, 잡지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증대하고 싶다면 4대 매체에 광고를 하면 되었다. 그게 답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오답에 해당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타기팅을 정밀하게 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이조차도 오답이 될 것이다. 이처럼 오늘의 답은 내일의 오답이 되고 내일의 오답은 모레의 답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 변하기 때문이다.


3.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다.


공자가 가장 강조했던 인(仁)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이러한 '인'의 단서라고 맹자는 말했다. 그런데 공자는 '인'을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 하나의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다혈질에 성격이 급한 제자에게는 '차분함'이라는 맥락으로, 너무나 신중하고 주저하는 제자에게는 '실천력'이라는 맥락으로 이를 가르쳤다.


모든 상황, 모든 사람에 적용가능한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답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일종의 생명체인 것이다.



위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분명함'을 분명하게 피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방관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부족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아짐에 있어서 '확신'과 그에 따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기여가 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틀릴 수 있음을 자각하는 신중함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현재 여기서 후자를 담당하려 한다.


여기까지 애매한 자의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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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ark Fletcher-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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