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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l 10. 2023

유토피아는 없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없다. 정확히는 없는 장소다.


유토피아의 어원은 그리스어 ou-topos다. 영어로는 no-place, 직역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없는 장소다. 우리가 이상향이라고 말하는 유토피아는 사실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있어야만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 공자가 말한 바가 그대로 이루어 사회가 존재한 적이 있었는가? 아니 그런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있었는가? 없다.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없는 곳이고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말이 회자가 되는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불완전한 꿈 꿀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완전한 꿈을 꾸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공자는 그런 사회가 있었다고 말했으나 갑골문의 발견으로 허구였음이 밝혀졌다)


삶뿐만 아니라 에 있어서도 유토피아가 있다. 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과 이상적인 방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야기할 세스 고딘도 부단히 이러한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존재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세스 고딘은 단순히 더 팔기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수단으로써의 마케팅을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마케팅 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 그리고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책 <This Is Marketing(마케팅이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마케팅'에 대한 내용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고, 마케팅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이 마지막 장을 위해 앞에 그렇게도 길게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서의 제목을 'This Is Marketing(이것이 마케팅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악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것이 마케팅이다'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세상물정 모르는', '현실감각이 없는'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다년간의 실무경험을 통해 이러한 수식어를 불식시키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느낀 점은 그가 브랜드 마케팅과 다이렉트 마케팅(우리나라에서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라 불리는)을 구분하는 방식과 관점이었다.(실무에서는 브랜드 마케팅과 브랜딩을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어 여기서도 구분 없이 써보겠다.)


다이렉트 마케팅은 행동을 지향하며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브랜드 마케팅은 문화를 지향하며 즉각적인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싣고 나서 사람들의 클릭 수를 세고 회전율을 측정하면 다이렉트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옆에 장례식장을 알리는 광고판을 세운 다음,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죽었을 때 이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면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 세스 고딘, <마케팅이다>, 샘앤파커스, 2019. 중 -


그는 이렇게 말하고 브랜드 마케팅의 광고 효과를 측정하려 하지 말고, 인내심 있게 할 수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실무를 해본 사람은 극히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매출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브랜딩을 해보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매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더 나아가 브랜딩의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브랜딩은 즉각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다이렉트 마케팅으로 변한다. 그전에 브랜드 마케팅에 쓴 비용이 허망해지는 순간이 이렇게 찾아오게 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무경험이 있는 세스 고딘이었기에 이런 점을 강조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소한 현상에 대한 통찰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가끔 너무나도 허술한 스팸 메일이나 문자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발신자에 대해서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왕자인데 수백만 달러를 나눠 갖자고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면 오자투성이에다가 가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단서가 너무 많다.  

스팸 메일을 전문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뻔한 실수를 저지를까?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신중하고, 실상을 아는 사람들에게 저리 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 스팸 메일의 목적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 대상은 탐욕스럽고 잘 속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래서 당신에게 시간을 들이느니 처음부터 놓치는 편이 낫다.

- 세스 고딘, <마케팅이다>, 샘앤파커스, 2019. 중 -


이처럼 멍청해 보이는 행동 이면에는 똑똑한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을 사소하지 않게 보는 것이 마케팅이자 마케터의 필수 역량일 것이다.


물론 이 책과 세스 고딘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그의 커리어 대부분이 마케팅 대행과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의 마케팅 실무였기에, 0부터 시작하는 사업을 위한 마케팅에 대한 인사이트는 부족했다.


나도 대부분의 커리어를 대기업 및 마케팅 대행을 하며 보냈기에 같은 실수를 하곤 했다. 인사이트가 0부터 시작하는 기업에도 적용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0부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냉혹한 현실을 견디고 극복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야생적인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점이 이 책과 세스 고딘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뭐 어쩌겠는가. 유토피아는 원래 없는 것을. 그럼에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세스 고딘과 이 책에 박수를 보낸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8





사진: UnsplashJohnny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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