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우치다 다쓰루의 모든 책을 읽었다. (지금 보니 몇 권은 새로 구할 수 있는 것 같아 주문했다)
나의 브런치스토리 글을 오랫동안 읽은 분들은 아마도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이니 말이다. <거리의 현대사상>(서커스출판상회, 2019)에 나온 그의 소개를 잠깐만 보자.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일본의 철학 연구가, 윤리학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무도가.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발견해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공부했다.
출처: 교보문고
간략하지만 그를 표현하는 핵심 단어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는 '거리의 사상가'다. 상아탑 위에 붕 떠있는 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치열한 거리의 삶을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사상가다.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기도 했고,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우기 위해 생계형 학자로서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상에서는 땀냄새가 난다. 매우 좋은 땀냄새가.
두 번째로 그는 무도가이다. 이것이 그를 여타의 철학자 및 사상가와 차별화해 주는 요소다. '신체성'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그의 사상 전반에 녹여내고 있다. 머리로는 감지할 수 없으나 신체가 반응하는 그러한 '신체성'을 거리낌 없이 주장한다. 누군가는 논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무도가로서 지낸 수십 년의 경험으로 이를 반박한다. 정확히는 반박이라기보다는 개의치 않게 내지른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써 내려간 니체가 떠오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에마뉘엘 레비나스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식 사제지간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스스로 레비나스를 스승으로 삼고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치다 다쓰루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말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치다 다쓰루는 '맹신'을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스승은 불완전해도 스승이라는 개념은 완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스승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로서 작용을 한다. '나'를 높은 위치에서 조감하기 위해서는 그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을 상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완벽한 스승이다. 마치 공자가 '요순시대'를 완벽한 시대로 상정하고 스스로도 배우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듯이 말이다.
현존하는 사상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우치다 다쓰루'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계기를 만들어준 첫 책이 <거리의 현대사상>이었다.
이 책은 마치 '압도적인 평양냉면' 같았다. 슴슴한 것 같은데 다 먹고 나면 엄청난 것을 먹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양', '문화자본', '경어'에 대한 그의 해석이었다.
그는 교양을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 즉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식'이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린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에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안다는 것. 모르기에 질문을 한다는 것. 그리고 모르기에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떠오르는 지점이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을 통해서는 계급과 계층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계급은 '자본'을 통해 주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층은 '문화자본'으로 구성되기에 태어나면서 유년기에 정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수백억 원 로또가 당첨되면 계급은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으나, 계층은 요지부동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취미, 교양, 예의범절,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업그레이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성인이 된 후에는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다.
'경어'에 대한 그의 시각도 굉장히 독특하다. 흔히 윗사람에게 보이는 예절로 '경어'를 바라보는데 그는 '생존도구'로서 바라본다. 경어의 '경(敬)'이라는 한자의 원래 뜻은 '몸을 비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자신에게 재앙을 입힐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존재와 반드시 관계해야만 할 때 '몸을 비틀어' 자신을 지키는 전략이 경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이 문법에도 맞지 않는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경어를 쓰는 것도 이해가 된다. 피할 수 없는 진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거리의 현대사상>에서는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신선한 시각이 가득 담겨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은 대중의 관심밖의 범주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의 범주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더 많은 내용을 풀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직접 끝까지 다 읽고 각자의 느낌으로 간직했으면 한다.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