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한 장이 항암제보다 비싼 세상, 자본은 생명보다 데이터를 택했다
엔비디아(NVIDIA)의 시가총액이 4.6조 달러(약 6,440조원)에 달했다. 전 세계 주요 제약회사를 다 합친 것보다 크다는 점이다. 화이자(Pfizer),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노바티스(Novartis), 릴리(Lilly), 로슈(Roche), 사노피(Sanofi), 머크(Merck),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빅파마를 전부 더해도 4.2조 달러(약 5,880조원)밖에 안 된다.
칩 하나 만드는 회사가 암 치료제, 당뇨병약, 백신을 만드는 산업 전체보다 비싸다. 이건 단순한 밸류에이션 왜곡이 아니라, 인류가 어디에 돈을 걸고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제약 산업은 수십 년간 쌓인 연구개발, 글로벌 제조 인프라, 규제 통과, 특허로 보호받는 지적재산권의 집합체다. 한 알의 알약이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리고, 수조원이 투입된다.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산업이다.
반면 엔비디아(NVIDIA)는? 데이터센터, AI 모델, 클라우드 컴퓨팅에 들어가는 칩을 만든다. 20년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술이다. 그런데 지금 투자자들은 암 치료제보다 GPU에 더 많은 돈을 건다. 자본은 이제 치료약보다 컴퓨팅 파워를 쫓는다.
이 비교가 보여주는 건 투자자들의 우선순위 변화다. 물리적 건강보다 디지털 지능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AI가 신약 개발을 가속화하고, 의료 진단을 혁신하고, 생산성을 폭발시킬 거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씁쓸하다. 인류는 여전히 암, 치매, 희귀병으로 고통받는다. 제약회사들은 그런 질병을 치료하려 애쓴다. 그런데 시장은 "너희가 만든 약보다 GPU가 더 중요해"라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는 것보다 AI 스타트업에 돈이 몰린다.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 총액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가치에 못 미친다. 자본의 논리는 냉정하다.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게 돈이 된다.
물론 엔비디아(NVIDIA)의 밸류에이션에는 거품도 있을 것이다. AI 붐이 꺼지면 조정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그래프가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칩 하나 만드는 회사가 인류 건강을 책임지는 산업 전체보다 가치 있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걸까?
제약회사 20개를 합쳐도 칩 회사 하나를 못 이긴다. 시장은 '살려달라'보다 '빨리 돌려달라'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