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 #3
“우리의 연약한 행성은 실타래에 걸려있다. 우리는 여전히 기후재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승인된 합의문 본문은 오늘날 세계의 이익, 조건, 모순, 그리고 정치적 의지의 상태를 반영한다. 불행하게도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는 모순을 극복하기 충분하지 않았다.”
-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COP26 회의에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11월 13일 끝났다. 이번 총회에서는 전 세계 기후변화 위기에 보다 강력하게 대응하고자, 합의문 초안에 2030년까지 ‘석탄발전의 단계적 퇴출’을 거론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석탄의 ‘단계적 감축(phase down)’에 합의하는 정도로 끝나버렸다. COP26 의장 알록 샤마는 회의의 부실한 성과에 사과했고, 기후환경단체들은 회의장 주변에서 ‘COP 장례식’ 퍼포먼스를 펼쳤다.
2015년 COP21 파리협정을 도출한 이후, 올해는 환경변화에 있어 중대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이전보다 아주 조금 나아간 정도의 합의는 모두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특히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기금 마련 안도 다음 회의로 미뤄졌는데, 이미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총회(COP15)에서 합의했던 내용이다. 올해 다시금 미뤄지면서, COP26에 참석한 개발도상국들은 이에 강하게 저항했다.
기후변화는 이제 되돌리기 힘든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노후대비를 할 때 기후변화까지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기후문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아무래도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이 더 크게 받는다. 커피생산국이 대부분 개도국에 속한 만큼, 기후변화가 커피산업에 끼칠 영향에 대해 우려도 크다. 브라질의 전례 없는 생산량 감소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 커피 로스터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로스터리 회사 매튜알지. 독립 로스터리인 매튜알지는 COP26에 2주 동안 25,000잔의 커피를 제공했는데, 공정무역(Fairtrade), 유기농(Organic), 열대우림(Rainforest) 등 3개의 인증을 보유한 30여 종류의 커피였다.
사실 매튜알지는 오랫동안 커피산업의 지속가능한 이니셔티브를 지원하고 실천해온 업체다. 영국에서 공정무역 에스프레소를 도입한 최초의 로스터, 지속가능성을 위한 3개의 인증받은 커피를 공급하는 세계 최초의 로스터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탄소중립 국제 표준를 달성한 로스터이기도 하다. 이러한 활동과 이력 덕분에 이번 총회에서 커피를 공급할 수 있었다.
매튜알지는 커피를 공급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11월 8일 진행한 One Carbon World의 ‘당신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지구를 지킬 수 있나요?(HOW CAN YOUR BUSINESS SAVE OUR PLANET?)’ 웨비나의 핵심사례 중 하나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선보였다. 커피산업의 주체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선도적인 사례로 소개된 것이다.
매튜알지는 90년대 중반부터 지속가능한 커피를 구매해왔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는 기후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커피생산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기금을 조성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자들을 교육하고, 농작물을 다양하게 재배하도록 하며,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장비 등을 지원한다. 그밖에도 파트너 카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후, 환경 문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제고하고 협력할 방법을 고민한다. 커피생산자가 겪는 거대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하지 않는 것. 함께 그 방법을 고민하고 대응하면서 이들은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COP26에서 커피생산국이 맞닥뜨린 현실은 비관적이다. 이번 총회의 결과가 그들에게는 즉각적인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2017년 네팔 커피생산지에서 농부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서리를 만나야 했다. 2018년 르완다에서는 갑자기 우기가 한 달 가까이 늦어지는 걸 직접 목격했다. 2019년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2021년 지금은 브라질 커피생산량 감소에 비상을 겪고 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속도마저 너무 빠르다. 자본도, 기술도, 자연조건도 불리한 개도국 커피생산자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생산지는 물론이고 소비국의 커피산업을 후퇴시킬 수 있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소비국의 문제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매튜알지도 커피를 파는 회사이고 로스터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커피시장은 영국보다 규모가 크다. 우리 같은 소비국 몇 나라만 움직여도 생산지가 받는 타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국 커피 시장도 이제는 생산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우리 비즈니스와 미래의 기후문제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