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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Feb 21. 2022

VII.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뒤얽힌 무지개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중 7번

꿈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정렬된 멜로디와 화성이 들리는 황홀한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색깔과 소리가 서로 맞닿아 회전하고 있었다.
불의 검들, 쏟아지는 블루 오렌지색의 화산암, 거친 별은 바로 뒤얽힌 무지개였다!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    


바로 이전 곡인 6번 '일곱 나팔을 위한 분노의 춤'에서 우리는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엔딩을 보았다. 시간의 종말과 함께 이 세상도 최후를 맞은 것이다. 이 작품의 영감이 된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 이후 천국에서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장면이 나온다. 7번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이 뒤얽힌 무지개'는 종말의 순간과 새로운 세상 사이에 일어나는 시공간의 뒤틀림을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

2번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보칼리제'에 등장했던 그 천사다. 요한계시록 속의 이 천사는 머리에 무지개가 있으며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는 땅을 밟고 있다. 종말을 선포하는 마지막 나팔이 울린 후 이 천사의 임무는 끝났다. 이 곡의 시작은 모든 임무를 마친 천사의 노래로 시작된다. 그리고 2번에 나왔던 음악 모티브들이 확장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뒤얽힌 무지개

만약 이 세상에 정말 종말이 온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아마 엄청난 폭발과 함께 우주의 입자가 흩어져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우주물리학에서는 모든 별은 저마다 수명을 다하면 폭발하고 흩어진 입자들은 서로 뒤엉켜 새로운 별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천사의 뒤얽힌 무지개는 시간의 종말이 선포된 후 흩어지는 입자들의 뒤엉키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멍 때리던 편집실, 아이디어의 탄생 

데드라인 직전까지 편집실에서 붙들고 있던 영상이 7번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뒤얽힌 무지개'였다. 총 1시간짜리 뮤비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데드라인을 이미 한번 늦춘 터였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시공간의 왜곡을 담으려니 연주 장면이나 스토리 텔링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영상감독과 촬영 소스를 뒤적이던 중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툭 던져봤다. '우주로 가시죠!'


순간 현감독의 눈빛이 반짝였고 그 역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과감한 그래픽을 넣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신나게 낙서하듯 작업하던 현감독은 한 시간 만에 편집을 끝냈다. 음악의 리듬과 화성에 맞춰 우주의 무브먼트를 조정하는 그의 능력은 놀라웠다. 무엇보다 도입부에 천사를 상징하는 커튼의 미세한 떨림과 그 안에 가려진 크리스털 상자가 내뿜는 빛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현감독은 종말이 완성되었다면 가장 먼저 시간의 비밀과 운명을 담은 이 크리스털 상자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상자는 이어지는 마지막 8번에서 확연하게 비밀의 정체를 드러낸다.          


   

메시앙은 무지개를 평화와 지혜의 상징으로 여겼다. 구약의 노아의 방주 사건이 끝나며 떠오른 무지개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간의 종말' 뮤비 밤샘 촬영을 마치고 울산 공연을 위해 바로 출발한 KTX 안에서였다. 기차를 타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는데 따스한 빛이 느껴져 눈을 떴다. 무심코 창밖을 보니 놀랍게도 무지개가 떠있었다. 하나님의 약속... 멍하니 무지개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10시간 강행군 촬영으로 지칠 대로 지친 피로가 한순간에 녹는 순간이었다.  


Special Point

종말의 순간은 두렵지만 그 장면은 생각보다 황홀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종말이 완성된 상태를 상상하며 시각적 효과보다는 음악을 중점으로 귀 기울여 보시길 추천드린다. 음악의 흐름에 따른 우주의 움직임이 새롭게 느껴지실 것이다.    



https://youtu.be/Yeks1 tBN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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