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아닌 길을 건네는 사람
교황, 5번의 숫자가 붙은 이 카드는 ‘지혜의 전수’와 ‘전통의 매개’를 상징하는 카드로 알려져 있다. 혼돈과 충동을 지나 안정의 뼈대를 세운 황제가 있었다면, 그 뒤를 잇는 교황은 그 질서 위에 의미와 언어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단단히 세워진 구조물에 숨을 불어넣고, 인간이 서로의 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다.
무하 카드에 그려진 교황은 화려하지 않다. 그는 두 제자 앞에 앉아 손을 들어 축복의 제스처를 취한다. 손에는 성스러운 지팡이가 쥐어져 있고, 머리에는 전통을 상징하는 삼중관이 얹혀 있다.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서 흐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와 제도라는 통로로 번역해 내는 사람처럼.
그 얼굴에는 권위보다는 무게가 먼저 보인다. 많은 이가 답을 얻기 위해 다가오지만, 정작 그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오랜 형식과 상징을 통해 질문에 견딜 수 있는 길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차분한 눈빛은 때로는 자비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냉정처럼 다가온다.
내게 있어 교황 카드는, 마치 탁 트인 넓은 들판을 강의실 삼아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가치를 널리 설파하는 교수님과 같은 모습이다.
내가 대학교에서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를 배우고 있을 무렵이다. 두 언어는 서슬라브어라는 틀 안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사용하는 단어들이 약간 달랐다. 그러다 보니 체코가 조금 더 큰 나라여서 그랬는지, 체코슬로바키아어과라곤 하지만 과의 커리큘럼은 체코어에 좀 더 중점이 쏠려 있었다.
사실,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 나는 전공 수업에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전공 수업은 재미있었고 잘하기도 했지만, 전공을 살려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미래가 없었다. 체코어를 잘한다고만 해서, 특별히 취업에 이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제대 후 복학하고, 외국인 교수님이 체코에서 새로 오셨다. 우리나라로 치면 체코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과장 정도 되는 분으로, 통상 외국인 교수는 반드시 박사급이 아니어도 괜찮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분이 오신 셈이었고, 전공 교수님께서도 그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셨다.
당시 학사조교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나는, 교수님이 한국으로 입국해서 외국인 숙소로 가는 모든 과정을 의전해야 했다. 집안 사정상 유학을 가 보지는 못해서 전공을 잘한다고는 해도,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솔직히 그때, 교수님의 말을 전부 알아듣지 못할까 약간 걱정도 앞섰다.
그러나 교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인자하신 모습으로 노교수님은 나의 체코어가 곧고 정갈하다며, 잘 배운 바른 언어라고 칭찬해 주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인상 깊은 첫 만남을 가졌다.
물론, 그 이후로 실제 수업에서 만났을 때, 인자함만이 아닌 강인함으로 진짜 체코어 수업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경험을 갖게 해 주셨다. 예를 들어, 교수님의 시험문제는 이런 식이었다.
'당신에게 있어 체코문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체코어로 썼어야 했다. 그리고 답지는 B4 한 장, 분량은 자유였다. 이 엄청난 자유도와 난이도 앞에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빼곡히 답을 채워 간신히 제출하는 데만 진땀을 빼야 했지만, 교수님의 수업은 언제나 이렇게 본질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수업이었다.
그런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행정조교 특성상 교수님과의 대화 기회도 많았는데, 교수님의 조언이 결정적으로 나로 하여금 박사학위를 받아 연구의 꿈을 갖게 하는 데 큰 이정표가 되었다. 어느 날, 문학사 답안지를 채점한 내용을 전산으로 정리하며 교수님 연구실에서 머물 무렵에, 문득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Karel, 너의 언어에는 힘이 있어. 본격적으로 체코어를 연구해 볼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내가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교수님은 내 답안지를 보여 주시며, 문장은 비록 어색해도 너에게는 논리가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문학과 어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맞는 문장이 아닌 자신의 문장을 갖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시며, 연구자로서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의 나는 교수님의 학문이, 비로소 나에게 이어지며 전달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지금의 기분이 더 오랫동안, 이분 밑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졸업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정해, 체코어를 더 공부하여 연구와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교수는커녕 대학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체코에서 현지취업을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유학 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혀 유학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현실로 돌아와 지금의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언제나 언젠가, 내게 금전적 여유가 해소되고 모든 상황이 다시 맞아 들어간다면, 나는 반드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것이 무언가 생산적일 필요 없이, 내가 교수님에게서 이어받은 의지를 더 확실히 깨닫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수님을 통해 나는 교황의 의미를 볼 수 있었다.
교황은 따뜻한 위로를 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통해 위로를 찾을 수 있는 언어는 태어난다.
누군가가 길을 잃고 있을 때, 그가 내민 작은 제스처와 반복되는 의식 속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교황은 묻는다.
너는 네 안에 담긴 배움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너보다 늦게 걸어오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겠는가?
너의 경험을 권위가 아닌 통로로 내어줄 수 있겠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아직 완벽한 스승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다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조차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걷는 길 위에 작은 발자국이라도 남겨, 누군가가 조금 덜 외롭게 건너가길 바란다.”
교황은 절대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혜를 전하려는 겸손과, 전통을 잇는 손길이 있다.
교황은 완벽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을 견디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의 길 위에 작은 등불이 된다.
그것이, 나의 교황이다.
지식을 건네되 강요하지 않고,
진리를 설파하기보다 질문을 견디게 하는 사람.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