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The Chariot - 멈추지 않는 의지

살아있음의 인생이라는 궤적

by Karel Jo


검은 말과 흰 말이 앞을 향해 달린다. 나는 그 고삐를 단단히 쥐고 앉아 있다. 말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려는 듯 긴장으로 뒤틀리지만,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둘을 묶어낸다. 그 순간, 전차는 곧게 나아간다.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돌진한다. 타로의 전차 카드 속 그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내 삶을 비춘다.


나는 INTJ다. 사람들은 이 네 글자를 두고 분석적이고 전략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다소 차갑고 기계적인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는 좀 다르다. 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무대 뒤편에서 끝없는 리허설을 반복하는 배우처럼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만약 이 길로 가면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만약 저 길로 가면 어떤 위험이 숨어 있을까? 눈앞의 판을 읽고 또 읽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불리하다 싶으면 물러나고, 다시 체스를 두듯 변수를 바꿔본다. 기어이,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그러나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되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망설임을 버리고, 마치 날아오르는 전차처럼 속도를 붙인다. 나의 결단은 한번 내려지면 후퇴하지 않는다.


졸업 후 예고도 없이 사회로 던져졌을 때, 체코에서 홀로 현지 취업을 결심했을 때, 그리고 지금의 직장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던 여러 순간들—그때마다 나는 이미 방향을 정했고, 전차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심지어 아내를 만나기로 한 순간은 더 극적이었다. 계산이나 손익분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행 비행기표를 끊는 내 손길은 오직 “이 길이다”라는 확신에 밀려 있었다. 그 결단의 무게는, 전차가 속도를 올릴 때 마차바퀴가 땅을 움켜쥐는 힘처럼 단단했다.




하지만 전차를 모는 일은 단순한 돌진이 아니다. 삶이란 길은 결코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방향을 정했다 해도, 말들은 언제든 옆길로 새려 한다. 어떤 날은 ‘이게 맞아!’라는 감각이 나를 압도하고, 또 어떤 날은 작은 물음표 하나가 모든 확신을 흔든다.


‘이게 맞아?’라는 낮은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면, 나는 다시 고삐를 움켜쥐며 자세를 고쳐 잡는다. 같은 문장, 다른 부호. 느낌표와 물음표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전차는 계속 달려야 한다. 그것이 전차의 본질이자, 내 삶의 리듬이다.


내가 전차와 닮았다고 느끼는 까닭은, 그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조차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멈추어 서면 차바퀴는 곧 흙에 박히고, 말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버린다. 멈춤은 곧 붕괴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나는 불완전한 확신을 안고서도, 여전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달리면서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으며 달리는 것. 그 역설 속에서 비로소 전차는 전차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늘 이 전차의 리듬으로 움직였다. 준비와 망설임, 돌진과 흔들림. 그 두 축이 교차하면서 나는 지금의 위치에 서 있다. 만약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혹은 조금 덜 성급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전차가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불안과 흔들림을 안고도 끝내 나아가는 힘이다. 흰 말과 검은 말은 언제나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하지만 그 긴장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전차에 올라탄다. 고삐를 움켜쥐고, 바람을 가르며, 속으로는 수없이 묻는다.


‘이게 맞아?’ 그러다 결국 어딘가에서 힘차게 외친다.

‘이게 맞아!’ 물음표와 느낌표가 서로를 밀어내고 번갈아 등장하는 그 여정,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방식일 것이다.


keyword
이전 08화6. The Lovers - 사랑의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