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The Hermit - 자신의 등불을 품는 법

우리 모두는 은둔자의 시간을 갖기에

by Karel Jo


8 다음에 이어지는 숫자 9는, 완성과 절제를 아우르는 숫자다. 8이 원 두 개의 조화를 의미하고 있다면, 9는 그 뒤에서 고요히 무너지지 않고 쌓아 올리는 시간이다. 동그라미 아래에 꼬리 내린 단단함으로, 완성이 뿌리내려가는 시간.


그렇기에 타로에서 아홉 번째 카드인 은둔자(The Hermit)는 전통적으로 ‘내면의 탐색, 고독, 지혜, 인도, 고요’를 상징한다. 뜨거운 전차를 지나, 내면의 어두움을 다스리는 힘을 갖고 이제는 자기 자신의 안을 충실히 탐구하는 모습, 이 카드의 단어인 은둔자는, 단순히 숨어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통의 타로에는 노인으로 묘사되지만, 무하 타로카드의 은둔자는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한 손에 등불을 마치 온몸으로 감싸 안고 한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등불은, 그러나 어딘가를 멀리 비추려는 빛이 아니다. 바로 내 발이 놓일 땅을, 또는 내 안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다.


이 은은한 빛은 누군가를 이끌기보다는, 내가 나를 안내하도록 존재한다. 어두운 배경 안에서도, 그래서인지 그녀의 표정에는 편안함의 안도감이 감돌아 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은둔자의 시간을 지나오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그 말은 마치, 세상과 단절되어 잠시 동안 숨어 지내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보여주기 위한 나, 증명하기 위한 나, 사회 안에서 통하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그저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모두에게 주어진 은둔자의 시간이다.


나 또한 은둔자의 시간을 보내온 적이 있다. 가장 가까운 기억이라고 하면 역시 팀장이 된 이후로,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모두에게 완벽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간이었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에게 모두 맞출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망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나는 그때 나를 잃어버리고 우울의 늪에 빠져 방황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때의 나의 마음은 언제나 어두웠다. 불안했고, 방향을 잃은 채 갈 곳을 몰라 어딘가 걷고 있지만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목적 없는 발걸음을 그저 이어나갈 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안해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나를 끊임없이 의심했어야만 했던 나날들,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음에 더욱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있던 등불을 스스로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울을 치료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나는 내 안에 있는 등불을 다시 찾아 발견해 내어 나만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로 스스로를 되돌려놓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시간은, 초라하고 막막할 때도 있었고, 여전히 때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명확한 믿음 아래 나를 되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올바른 길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되찾은 나의 등불을 단단히 쥐고, '지금 여기, 이 길이 나에게 필요한 길이다'라는 조용한 확신 아래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나를 되찾는 여정을 걸어 나가고 있다.




은둔자의 시간은 길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나 자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누구도 정해줄 수 없는 길이며, 다른 사람의 풍성한 대화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혼자만의 침묵 안에서 더 깊은 통찰을 얻으며 방향을 잡게 된다. 때로 많은 시간을 침묵하며 생각해야 하는 기다림은 무겁게 스스로를 짓누르지만, 그 기다림 끝에 증명된 밝음은, 언제나 올바르게 우리를 이끄는 법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특정 순간에 은둔자의 길을 통과하게 된다. 그것은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일 수도 있고, 연인과의 관계가 끝난 뒤의 시간일 수도 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때일 수도 있다. 또는 잃어버린 나 자신의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다시 되새기는, 삶의 당위성을 찾아가는 시기일 수도 있다.


이 시기는 외롭다. 이해받지 못하고, 앞이 보이지 않으며, 때로는 모든 게 무너져버린 듯한 무기력에 빠진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 진짜 힘이 깨어난다. 소음이 사라질 때, 빛이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은둔자는 말한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겠지만, 이 어둠은 너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의 길을 찾을 때다.”


‘은둔자’는 세상에서 물러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람이다. 그의 등불은 작지만, 그 빛은 어둠 속에서 가장 멀리까지 닿는다.


그래서 이제 나도 안다. 삶에서 중요한 질문은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는 것을. 결국은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 있고, 그 길 위에서야 비로소 나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두렵지만, 이 조용한 길을 계속 걷기로 한다.


등불 하나, 침묵 하나, 그리고 나 자신만을 믿으며.

keyword
이전 10화8. Strength - 사자와 함께 걷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