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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he World - 다시, 나의 세계

이제는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by Karel Jo


Judgement, 천사의 마지막 말 한마디인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다시 살아가라는 그 엄숙한 선언 앞에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카드는 The World, 세계 앞에 서게 된다. 마지막에 배치된 이 카드는, 담백하게 우리에게 자리 잡는다. 완성이라는 이름 하에, 그간의 흔들림과 부침, 그리고 새로운 다짐 끝에 용기를 갖고 다시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하나 됨의 선언'.


카드의 중앙에는 자유롭게 천을 둘러싸고 있는 한 사람과, 그 사방으로 사람, 독수리, 황소와 사자가 배치되어 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가진 생명의 원소가, 중심에 뭉쳐 비로소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더 이상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이제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되는, 마치 우리에게 "이제 너의 세계를 다시 품어 보라"라고 말하는 듯한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티 없이 강렬하다.


그러나 처음 이 카드에 도달했을 때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나 기대감이 아닌 '공허함'이었다. 완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출발을 기뻐해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나에게 남아있는 감정과 느낌은 그저 조용함이었다. 그 낯선 조용함 앞에, 나는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끌어온 원동력이라고 하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아감'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삶은, 조용했지만 치열했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그런 꿈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대부분 이루었다.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언제나 나 스스로를 소진해 오며 얻어냈을 때의 성취감과, 주변 사람들의 찬사로 성공을 배불리 맛보아오며 살아왔다.


'되고 싶은 나'임에 틀림없었다. 단지 그 되고 싶은 나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을 뿐. 나는 기대감을 받는 사람이었고, 그 기대감을 언제나 충족시키는 사람이었다. 믿을 수 있는, 본받을 수 있는, 언제나 말과 행동이 곧으며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만 같은 사람. 실제로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 나는 인생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그리고, 그 증명이 반복될수록 내 안은 더없이 시끄러우며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인생에 부족할 것이 없이 행복이 가득해야 하는 사람. 나의 삶은 표면적으로, 객관적으로 잘 짜인 모범적인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렇게 점점 우울함 속으로 빠져들었을까. 왜 항상 스스로가 모나 있고, 문제는 언제나 나에게서 출발하며 나 자신을 의심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을까. 망상이라면 망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망가진 인지. 과거의 나의 세계 안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내가 서 있을 곳에서 서 있지 못하고 땅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만 갔다.


수많은 성찰과 수많은 생각, 그리고 셀 수 없이 넘겨온 알약의 끝에 다다른 경험은,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또는 스스로를 보려 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헐벗은 나를 돌볼 줄 몰랐고, 언제나 더 채찍질하며 생각했다.


아직은 힘들지 않아.

나약한 생각 해서는 안 돼.

그럴 만한 위치에 올라왔잖아. 견뎌야지.

이번에 또 증명해 내면, 난 더 인정받을 수 있어.


그런 자신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새롭게 다시 본 나를 겪고 나니, 그제야 The World, 내 앞에 놓인 세계의 카드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카드로 탈바꿈한다. 거창한 완성이라는 표현이 아닌, 더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길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 길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 스스로를 힐난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보듬어줄 수 있는 그 용기를 가지겠다는 다짐.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중심에 서서 걸어갈 세계의 앞길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수천 가지의 이름을 가진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더는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맞춰진 되어야 할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 없이 웃고, 불안한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됐다. 내 안의 어둠과 빛이 함께 존재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나는 그 두 가지를 함께 끌어안은 채로 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이게 바로 The World가 말하는 진짜 완성이 아닐까.


물론, 나는 안다. 이 완성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다시 걸어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언젠가 또다시 무너지는 날도 올 것이고, 다시 질문 앞에 서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모든 흐름조차도 나의 세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흔들림이 두렵지 않다.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니까. 하루나 이틀 정도 흔들려도, 다음날 다시 돌아와서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여유는 삶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의 박수가 없어도, 다른 누구의 시선이 닿지 않아도. 조용히 나를 불러내고, 그 부름에 나 자신이 대답하는 순간, 그것이 내가 세상과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 말이 내게는, 이 긴 여정의 가장 진실한 결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다시 걸어갈 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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