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이 장소를 넘어 ‘사람’이 되는 순간
두 번의 결혼식을 마치고 난 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신혼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는 몹시도 지쳐 있었다. 솔직하게 한국의 결혼식은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종일 술과 춤을 반복했던 우크라이나의 결혼식에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두 시간 남짓에 모든 걸 다 끝냈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굉장히 압축적으로 바빴고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결혼식 후에 진행하는 폐백이나 기타 등등을 다 빼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마치고도 피로연장에서 내 지인, 부모님 지인, 친척들과 정신없이 인사 다니는 시간을 지나고 나니 솔직한 감상으로 밥을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지친 아내와 나는 그저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집에 가서 치킨이나 한 마리 시켜 먹고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뭐, 그래도 어차피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식대가 빠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아내는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먹을 만큼 먹고 녹다운되고 말았다.
이래서 결혼식이 끝나면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우리가 바로 당일날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고 나의 결혼식날은 토요일, 그리고 결혼 휴가는 평일 5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서둘러서 일정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고 싶느냐?라는 질문은 언제 생각해도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쌍가마의 저주에 걸맞게 결혼을 한 여자와 두 번이나 한 나의 입장에서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신혼여행에 대한 상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알 수 없는 기쁨과 설렘으로 온몸이 반응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 어째서, 신혼여행이란 그렇게 특별한 걸까.
그건 아마도 보편적으로 일생에 있어 '단 한 번'일어나는 이벤트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뭐든지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모든 말 앞에 '첫'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경험은 왠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첫사랑이라든지, 첫 입학식이라든지, 첫 회사생활이라든지, 뭐든지 결국에 남는 건 처음과 끝, 태어남과 죽음 아니겠나.
생각이 많고 준비성이 철저한 J인 나는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부터,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누구와 결혼해도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 내 안에서 꿈꾸고 있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몰디브였다. 왜 몰디브를 생각하냐고 하면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흔한 이유로 인터넷에서 몰디브 해안가의 별의 바다 사진을 보고, 이런 광경을 일생의 동반자와 겪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나중에 그 별의 바다는 반드시 몰디브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했어도, 나에게 있어서 몰디브는 그냥 그렇게 일종의 '결혼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결혼할 상대가 나온다면, 상대방의 의사도 중요하겠지만 신혼여행지는 가급적 그곳을 가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그렇게, 아내에게도 청혼 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혼여행지를 선호하는 곳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는 나의 몰디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바닷가를 접하기 쉽지 않았던 아내에게 있어, 직항도 없이 불편하게 섬으로 이동하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쉬웠지만, 신혼여행이란 것을 나 혼자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바다에 익숙해지면 신혼여행이 아니라 황혼여행으로라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섬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생각보다 아내는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유럽만 빼고는. 하긴, 어쨌든 자기가 살던 지역인데 크게 보고 싶을 것은 없었을 것이고, 나 또한 4년간 체코생활을 하면서 딱히 안 가본 유럽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배제되었고, 아시아 주변으로 1월에 갈 만한 곳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생각보다 우크라이나 여권이 갖는 파워가 너무 약했던 것이었다. 동남아시아를 둘러봐도 아내가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곳은 태국 정도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도착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되거나, 사전에 미리 관광비자를 받고 가야 했었다. 하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타국 비자를 다시 받는 것에 심적 부담을 좀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 택한 곳은 '제주도'였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로, 우리는 지금까지 거의 매년 제주도를 찾고 있는 일종의 연례행사와 같은 장소가 되었다. 여러 경비가 많이 절감되었기 때문에, 5성급 호텔에 신혼여행비를 모두 털어 넣을 수 있게 되자 우리는 지체하지 않았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5성급 호텔에서 숙박해 보겠냐는 생각으로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 다음날 두 손을 맞잡고 제주도로 향했다.
사실,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다니면서 특별히 뭔가를 많이 하고 다니지 않았다. 중문단지의 호텔에 있었고, 겨울철 제주바다는 운전에 그렇게 녹록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하루에 가고 싶었던 명소 한 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 테라스의 카페, 또는 수영장과 스파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해보겠냐는 근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혼여행을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중에서도 아내가 감명받은 것은 호텔 조식에서 먹을 수 있었던 '와플'이었다. 솔직히 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아마 지금 다시 가서 먹어보면 그때의 그 맛은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런 다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만한 자리에 올라가서, 이런 곳을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라 언제나 올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위치가 되면, 우리 그날에 다시 돌아와서 다시 이 맛을 같이 즐기자고.
그 약속을 하며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니, 거의 강박적으로 몰디브를 고집했던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별의 바다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깨닫게 된 것이, 나는 예전에 그 파란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기 위한 곳을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몰디브든, 제주도든, 하다못해 집 근처에서 펜션을 갔어도,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신혼여행은 즐거웠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아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더라면 그게 어디든.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래서인지 우리는 이상하게 매년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연차가 지날수록, 뱃속에 아이를 갖고 가기도 했고, 첫째가 조금 컸을 때도, 그리고 올해 둘째의 첫 비행기도 우리는 그렇게 언제나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때의 와플에 크게 웃음 짓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매 년 항상 다짐하게 된다. 약속했던 것처럼, 다시 아내와 와플을 먹으러 가기 위해 열심히 가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