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운이 아니라 운명이다를 확신하게 해준 순간
부모 세대의 육아를 참견이 아닌 조언으로 받아들이던 그 때부터, 우리의 육아는 조금 더 유연해졌다. 물론, 자기 자식을 셋이나 키우고도 각자 자식들이 낳은 손주까지 봐 주느라 이미 일곱 명이나 아이를 키운 베테랑인 어머니의 눈에 보기엔 성에 차지 않는 모습들이 많았겠지만, 어머니께서도 조언하되, 나서지 않는 모습으로 희망이가 점점 아기를 벗어나 한 사람의 아이,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 과정이 그렇다고 해서 모두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빠와 엄마라는 게 처음이었기에, 아무리 현명한 조언이 옆에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게 낯선 우리는 좌충우돌하며 결국에는 몸으로 육아의 정답을 받아내야 할 때가 있었다.
아이의 열이 40도 가까이 처음 육박한 순간, 지금에야 탈수 증상을 보이는 게 아니고서야 열이 올라도 해열제를 교차복용 해보며 하루 정도 기다려 보자는 경험치가 있지만 그 때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랬듯이 밤늦게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기도 하며 탈진하듯 육아를 경험했다.
더 많이 신경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배워야만 했던 그 백일, 그 돌이 지나 어느덧 아이가 걸어다니기 시작하고, 그 걷는 감동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옹알이를 시작하며 점점 우리의 희망이 아기에서 아이로 접어드는 시점에, 나와 아내에게는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다. 바로 ‘집’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가족의 명의로 산 ‘우리의 집’.
처음 신혼집을 투룸 빌라로 시작하여 아이를 갖게 된 시점에서 옮긴 구축 30평짜리 전셋집 아파트, 주변에서는 결혼할 때부터 아파트를 무리해서라도 사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고, 뉴스에서도 똘똘한 한 채 이야기만 계속 나오며 지금 당장 영끌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던 그 시절, 2021년이었다. 전셋집 만기가 반 년 조금 넘게 남았고, 당시 내 경제적 상황으로 감당할 수 있는 몇 개의 청약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본 나는 내 집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딱히 선망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우며 헌신하셨던 부모님께 언제나 감사하지만,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주민등록초본을 떼면 초본이 네 장이 나올 정도로, 나는 내가 태어난 군산에서도, 그 후로 옮긴 안산에서도 수많은 이사를 경험했고, 심지어 중간엔 체코도 한번 나갔다 왔으니 평균을 내보면 2-3년 주기로는 꼭 한 번 이사를 한 셈이었다.
그러니 사실 내 집을 갖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내 집이 필요하느냐?라는 생각을 갖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2021년 당시 집값이 너무 뛰었기 때문에 내가 감당 못할 빚을 내면서까지 내 소유의 등기를 치는 게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현실적인 생각과 달리, 우크라이나에서 자기 집을 소유했던 아내는 현재의 전셋집에 약간의 불만을 얘기하며, 꼭 신축이 아니어도 좋으니 우리 아파트를 사자는 말은 아이를 낳기 전에도 많이 했었다. 간단한 예로, 집에 액자를 걸 생각이 없는 나와 달리 아내는 액자를 걸거나, 화분을 놓거나 하는 등 집을 꾸미는 걸 좋아하지만, 전셋집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자유롭지 못하니 말이다.
우리가 이 고민을 하던 2021년 시점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분양가상한제를 동시에 시행하던, 결국 로또에 운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결혼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생애최초, 신혼부부 어느 쪽으로도 특공을 노려볼 수 있었던 우리는, 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청약을 일단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어보고, 그게 안 되면 안산 중심가의 구축을 매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호기롭게 넣은 청약에 걸은 나의 운은 그렇게까지 녹록하지 않았다. 광주의 어느 단지에는 예비 3번을 받아 마치 대학교 예비합격생이 입학을 준비하듯 이건 끝났다! 하며 미래계획을 짜던 나는, 그 예비 3번이 빠지지 않아 쓰라리게 좌절했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집이란 운명과도 같은 걸까? 진심으로 지금 살고 있는 안산의 구축을 둘러봐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출근길 운전대를 잡은 어느 날, 청약홈 문자에 나는 잠시 비상등을 켜고 핸드폰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통상 예비번호를 확인하라는 말을 봐야 했던 여러 경험과 달리, 지금 용인 집에 넣은 신혼부부 특공이 당첨되서 동호수가 나온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문자가 잘못 온건가? 라고 생각하며 잠시 구석진 골목에 차를 대고 청약홈 홈페이지에서 정식으로 결과를 확인해 보았고, 문자는 잘못되지 않았다. 전매제한 및 재당첨 제한 7년, 비록 용인의 외곽이기는 해도, 나와 아내와 희망이가 살아갈 우리의 집은 그렇게, 거짓말같이 우리 품에 안겨왔다.
먼저 전화로 부모님과 아내에게 소식을 알리고, 일을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는 정신으로 저녁에 돌아와 다시 네이버지도에 지어질 단지 주위를 검색하고, 이사 시기와 많은 걸 검색해 보면서 새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삶에서 많은 일을 아내를 만나고 나서 경험하고 있지만, 이제 내 이름으로 직접 등기라는 걸 쳐 보는구나. 어쩐지 결혼할 때보다, 첫 아이를 출생신고 하던 그 때보다 집을 계약한다는 사실이 더 무겁고, 어른다운 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집이 생겼다는 건, 그 안에서 아이는 더 멀리 걷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집에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지만, 이제 희망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어른을 체감했을지도 모른다. 내 품 안에서만 자라던 아이를 타인의 공간에 맡긴다는 일. 비상등을 켜고 당첨 문자를 확인하던 그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떨리는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