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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다

책임이 늘다

by Karen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도, 아빠도 부쩍 늙었다. 늙음이 느껴질 정도로 확연히 늙었다. 혹자는 말했다. 이제 자식으로서의 책임은 끝났고, 부모로서... 그리고 한세대가 감에 따라 내 차례가 다가온다 하는 생각으로 부담감과 두려움이 증폭돼 늙어지는 거라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일에 치여, 여전히 집에 2주에 한 번꼴로 오시는 아빠는 최근 건강이 악화되셨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14살 때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넘게!!!

부모, 형제를 위해! 결혼을 하고는 처, 자식을 위해 밤낮없이... 돌이켜보면 우리 남매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휴가 한번 다녀온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희생하고 혹사시킨 아빠는... 병들어가고 있었나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할머니 병원이나 간병, 간호는 대부분 딸인 고모나, 며느리인 엄마와 작은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유방암 발병으로 수술을 받으신 할머니! 생각해보니 그때 고모는 29!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는데... 대부분의 책임과 책무는 고모의 몫이었다.


사실상 나는 내 두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책임이 가장 컸지, 부모님의 보호자로 무언가를 하게 되는 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빠가 큰 병원에 정밀검사를 요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큰 건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 두 번째는 내게 오는 책임감이었다. 이제 나도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딸로서의 역할보다, 그들을 보호해줘야 할 보호자가 되어야 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안도하는 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 걱정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고, 책임과 부담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외동인 남편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늘 생각한다. 본인은 외아들이라 부모님이 자신을 많이 의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운동을 했던 터라 승진을 미뤄두고 시합 때마다 따라와 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외동이라 결핍 없이 자라라고 물심양면 지원해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까지~ 외동이라 부모님이 많은걸 주셨었고, 그에 따라 성인이 된 이후엔 그 보상들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건진 모르겠지만... 가끔 그 부담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 걱정은 차후 부모님이 늙고 병드셨을 때, 간병 부분과 요양 부분이라고 했다. 거기다 형제자매가 없어서 함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는 것에 대한 결핍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나는 남매여서 둘이고, 사촌과도 너무나 가까운 사이여서 다행인데, 사촌과도 그다지 관계가 깊지 않고, 혈혈단신 혼자인 남편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가 우리 남매를 낳고, 할머니와 고모가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14년 동안 사촌 동생까지 온전히 사랑으로 양육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 우리에게 난관이 닥칠 준비를 하는 시점에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사실상 마음으로 든든한 건 확실하니까 ㅠ)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저 얼굴에 주름 하나 늘고, 뱃살이 좀 처지는 것만이 아니라 지녀야 할 무게감! 책임감이 는다는 걸 요즘 절감한다.


부디 아빠의 건강상 적신호가 잠깐 지나가는 일련의 해프닝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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