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걸어가면 꽤 커다란 공원이 나왔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공원이라기에는 나무둥치가 꽤 굵었다. 이 정도의 두께라면 나무의 나이테도 제법 층층이 고리가 생겼으리라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봄이면 연둣빛 여린 잎이 가득 피어오르고 가을이면 바닥에 샛노란 잎사귀들이 산책길에 수북이 쌓였다.
더 좋은 건 공원 안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2층 정도의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은 커다란 크기로 대여섯 실이 있었고, 책을 빌릴 수 있는 자료 열람실도 다른 도서관에 비해서 넉넉했다. 책들이 마냥 깨끗하지는 않았다. 도서관이 건립된 세월만큼이나 여기저기 낙서가 되어있거나, 군데군데 찢긴 책들이 타인들의 흔적을 눅눅히 묻히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도서관 책들의 매력이라고 나름 생각했다. 묵직하고 텁텁한 책들의 향이 그 어떤 향수보다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만들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야만 도서관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익숙지 않은 곳의 작은 도서관은 성에 차지 않아서, 날이 좋다면 적당하게 페달을 굴려 예전에 다니던 도서관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겹겹이 늘어선 서고에 읽지 않은 책들이 가득 쌓여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보물 찾기하는 기분이었다. 자료실 안은 언제나 고요하고, 책을 넘기는 적당한 소음과 발걸음 소리만이 깔려있어,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 있을 수 있었다.
바다에 난파선을 찾는 트레저헌터처럼 나는 도서관에서 책들을 누비고 다닌다. 모르던 작가, 모르던 단어, 모르던 문장, 모르던 이야기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듯이 눈앞에 펼쳐진다. 활자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각각 그림을 그려댄다. 뚜렷하지 않아서 더욱 황홀하다.
불안과 열정이 공존했던 20대를 뚜벅이며 지나치고, 예상치 못한 육아 노동과 기대치 않았던 행복에 휩싸인 채 30대를 정신없이 지나왔다. 문득, 하늘을 보니 이제 곧 50을 바라본다. 과거의 모든 장면에 슬며시 도서관이 끼어있다. 미래의 모든 순간에도 가만히 발을 내밀 테지.
곧 추석이다. 올해는 조금 더 긴 연휴가 될 터이니, 가볍게 다시 페달을 밟아볼까. 바스락 향이 나는 나무들과 두꺼운 책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제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줄 테니까.
#도서관
#도서관가는길
#가뿐사랑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