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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퇴사의 교훈: 삶의 서사, 꼭 회사에서 써야할까

회사를 제외한 당신의 삶,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by 카리나

퇴사를 7번 반복하며 깨달은 것을 질문으로 표현한다면?


“아영아, 너의 삶의 서사를
왜 '회사'에서 쓰려고 그렇게 노력했어?”

기왕 회사에서 삶의 서사를 거창하게 쓰려고 했었으면 대기업, 글로벌 기업, 외국계로 이직하면서 소위 ‘대기업 출신의 홍보팀’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만들걸.

(....안만든걸까 못만든걸까.)


Kearney의 현보님이 파트너로 리딩하시는 <리더의 서재>에서 ‘개인의 삶의 서사를 회사에서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나의 서사를 ‘회사’라는 공간에 한정해서 어떻게든 쓰기 위해 했던 과거의 노력을 톺아보며 느꼈다. 정작 ‘임아영’이라는 사람을 회사 밖에서는 들여다본 적 없다는 것을.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필자처럼 ‘직장에서의 나’를 진짜 나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삼성전자 김 과장’, ‘엔비디아 윤 본부장’ 처럼 성과, 직급, 회사 등을 언급하며 호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쩌면 사회생활에서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룰(Rule)이다. 주경야독하는 특수대학원에서도 이름이 아닌 ‘선생님‘으로 서로를 부른다. 존중의 의미겠지.


ADOBE FIREFLY에게 쳇바퀴에서 있는 일개미 나 VS. 진짜 나를 이미지화 해달라고 했더니, 귀여운 햄스터가 나왔다.ai


사회생활로 만났다가 친구가 된 경우에는 어떤가. 뒤늦게 ‘언니’, ‘형’과 같은 호칭을 쓰는 것은 영 어색하다. ‘You can call me 'Karina'.’라며 이름으로 부르라는 영미 문화권처럼, 나를 온전히 ‘이름’으로만 부르는 문화가 과연 대한민국에 정착될 수 있을까.


성과, 평가, 직급, 연차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사회생활. 이직 인터뷰에서 이런 요소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피칭한다보니 일상에서도 이렇게 나를 회사로 소개한걸까.


회사를 뺀 나는 누구인가

지난 10월 퇴사 후, 인터뷰를 보러 다닐 때다. 이직사유를 말할때도. 이력서를 정리할 때도.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늘 회사생활, 사회생활에서 보여주고 싶은. 보여지는 나에 대해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0에서 1을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강한. 스타트업 3곳에서 성장을 견인하는 홍보인 임아영입니다.”라고.


면접에서는 늘,


“시리즈A 스타트업에서는
CES2025에서 혁신상을 개발자분과
둘이 준비해 Honoree 수상이라는
큰 성과를 해냈습니다.

시리즈B 스타트업에서는
CES2024등 북미마케팅의 총괄 하며
실무도 같이 뛰었습니다.”

라며 회사 중심의 언어로 자기소개하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갔다. 그 상황에서는 회사를 뺄 수 없지만, 회사를 뺀 나는 대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고 알게되었다. 나도 모르게 ‘회사’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가장 Massive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즉,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주 언어(Main language)가 되어버렸다. 덧셈 뺄쎔과 같은 수식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회사 - 임아영 = 0’인채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참나. 욕심이라도 있으면 말을 안한다. 이렇게 살아온 것 치곤 참 내세울게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리나입니다. 하고 담백하게 이름만 소개할 날이 올까?


번아웃 끝에 회사를 떠났던 2024년 가을에는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났었다. 여행도 즐겁게 다녔다. 간혹 네트워킹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LG경제연구원에서 보고서쓰는 카리나 입니다.’ 또는 작은 스타트업이라면 ‘HR Tech 스타트업에서 홍보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PR하는 카리나입니다.’ 처럼 회사 이름과 직무, 이름을 밝혀야 하는데 그럴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떻게 자기소개를 해야할지 막막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전까지
인공지능 스타트업에서
국내외 홍보를 총괄했던 카리나입니다.
11년차를 맞이해 지금은 놀고 있고요.."


와 같이, 굳이굳이 과거의 회사와 직급과 분야, 연차를 언급하며 머뭇거렸던 입술을 움직였다. 과거의 경험을 끌어다 자기소개를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게 맞나?”싶었다.

당시, 굳이 과거의 커리어 히스토리를 이야기 한 이유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으로 나를 소개하면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푸대접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였다.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가 확실하게 잡힌 한국에서, ‘백수’가 가진 이미지를 굳이 입밖으로 꺼내기 싫었던 모양이다. 대학원 자기소개서까지 굳이 과거 경력을 꺼내 쓴걸 보면 체면 의식과 소위 label을 버리지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인가보다.



생각해볼 문제(food for thought)

언젠가 우리는 회사를 떠날 것이다. 회사가 우리를 대변해주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커리어만 많으면 뭐하나. 좋은 회사에 다니면 뭐하나. 직장인이면 뭐하나. 이뤄온 것들이 커리어밖에 없는 삶. 혹자는 커리어로 꽉 찬 삶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진짜 나’, 임아영이라는 사람의 인생에게 커리어만 있다고 한다면 꽤나 슬프다.


7번의 퇴사를 하면서 1-2주 텀으로 쉬었던 경험이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잠깐 여행에서 리프레시하고 다음 회사에 빠르게 온보딩할 준비로 바빴다. 그러나 2024년 10월 퇴사 후 가진 공백기는 달랐다. 퇴사 직후 가졌던 8개월의 공백기야 말로 ‘나를 나로서 마주하는’ 첫 시간이었다.


ai는 스스로 마주하는 것을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듯.firefly (그리고 왜 ....어찌해서.. 겨울?ㅋㅋ)


사실,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능성과 확장의 관점으로, 어쩌면 7번이나 나라는 인재를(!!) 알아본 회사에게 감사해야 할텐데, 막상 7번의 이직이 남긴 지저분한 이력서를 보는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것에 점점 무너져갔다. 나는 누구지. 난 어떤 취향이라 말할 것도 없는, 무향 무취의 사람이구나.


그나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다만, 좋아하는 것을 넘어 무언가에 대한 깊은 취향, 꾸준히 하는 취미,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키워드, 삶에 대한 태도 등 ‘진짜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알지 못해 충격이 컸다.


11년간의 사회생활, 그리고 20대를 가득채웠던 학교 생활. 더 오래전 10대 학창시절까지.

과거를 하나하나 돌아보며 꾸준히 좋아하는게 뭔지. 좋아하는 음료는 뭔지. 문득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헬스를 3년, 필라테스를 5년, 발레는 3년 할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구두와 운동화 모두 좋아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참 좋다.

그리고 쉬는동안 삶의 우선순위와 서사를 새롭게 짰다.

더 이상 직장에서 잘 해내기 위해, 완벽주의를 앞세우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차별화되고 능력을 보여주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삶은 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커리어가 나의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 삶은 약 40년이면 족하다.


아, 오해하면 안된다. 늘 그렇듯 직장에서는 능력을 백만분(!)발휘해 일하고 회사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나를 태울 것이다.


커리어를 우선순위로 세우지 않겠다는 말의 의미는,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목숨걸고 화내거나, 매출을 2000% 올린 것이 나의 삶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는 나의 여러가지 모습 중 하나인 ‘직장인으로서의 임아영’이 낸 성과지, ‘인간 임아영’의 성과가 아니다. 즉, 과거 나는 내 자신을 모르고 사회적인 자아가 곧 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인간 임아영’을 알아갈 것이다. 지난 11년과 달리,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스타트업에서 투자유치와 스몰서비스의 큰 성장을 PR과 콘텐츠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고, 때로는 나를 태우며 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회사 안에서 내 서사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나의 삶을, 나의 언어로, 나를 위한 문장으로 기록한다.


재밌는 것은, 나와 잘 맞는 청바지는 입는 순간 감기고, 나와 잘 어울리는 향수는 향이 하루종일 지속된다.perfume

10년째 좋아하는 꽃은 자나장미,

8년째 쓰고 있는 향수는 에르메스의 ‘운 자르뎅 수르 라운 오 드 뚜왈렛’이라는 (매우 TMI) 좋아하는 소비재 취향을 명확하게 아는 것처럼(??ㅋㅋ....).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을 끔찍하게 소중하게 여기고 많이 의지하는 나는..


이제 내가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진 채, 어떤 삶을 살아갈지.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원가족은 지키고 새로 꾸릴 가정을 어서 준비하려 한다. 천천히 나만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남은 40년을 살아가려 한다.


여기까진 읽은 독자! 감사한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삶에서 커리어를 제외하면 당신은 누구인가요?


삶 - 커리어 = 당신은 누구입니까?





글쓴이 카리나는..

11년 이상의 글로벌 PR 및 콘텐츠 마케팅 경력을 바탕으로, IT, 헬스케어, 유통산업 분야에서 리드 전환 성과를 창출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커리어는 전문성 강화와 도전의 연속이었으며, 이제는 그동안 쌓아온 콘텐츠 마케팅 노하우와 언론홍보 역량을 한 조직에 장기적으로 기여하여, 브랜드 론칭부터 지속까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open to work!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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