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번 퇴사한 (구)프로이직러의 '후회하는 퇴사'

12년 PR 경력은 쌓였는데, 왜 그때 마음엔 구멍이 났을까

by 카리나

”7번 퇴사했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퇴사해서 후회되는 회사가 있냐고.


사람에 따라 대답을 조금 다르게 하는데(?) 오늘은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한다. 사실 7개 회사 중, 한 곳의 회사를 퇴사한 것에 대해 시원섭섭한 감정이 있다. (후회라고 하기엔 조금은 애매하다.)


어떤 퇴사는 후회가 되고, 어떤 퇴사는 다시는 보기 싫을 만큼 속 시원했을까. 이 또한 어쩌면 나의 커리어골(Career goal), 그리고 가치관과 연관 있을 듯하다.


오늘은 후회한 퇴사, 후회하지 않은 퇴사.

두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후회한 퇴사: 성장 경험의 단절

고백하건데, 국내 TOP3 홍보대행사 M사를 너무 일찍 퇴사를 질렀다. 당시 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여전히 있다. 물론 202x년 M사에는 슬슬 탈출 러시가 불고 있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주변의 동료나 후배, 선배가 그간 착실히 경력을 쌓아 인하우스 홍보팀으로 이직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마음이 조급했었다.


보통 에이전시에서 3~5년 버티면 좋은 중견기업 이상을 갈 수 있고, 7년~10년 정도 버티면 대기업에 갈 수 있다는 썰이 있다. 물론, 에이전시에서 2~5년 버티고 대리급이나 사원급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대기업에 갈 수 있긴 하다.


사실 M사에 합류하기 전, 나는 그들의 고객사였다. 문득 다시 PR과 콘텐츠 마케팅의 커리어를 제대로 쌓고 싶어서 면접을 보고 들어간 운 좋은 케이스였다. 대리로 입사해 클라이언트는 3~4개를 맡으며 다시 대행사 특유의 그 빠른 호흡과 제안서 작업을 하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꼈다. 또, 서로 다른 브랜드 주기, 즉, 맡은 브랜드는 모두 브랜드 전 생애주기 중 다른 단계에 있었기에, 업계 내에서 해당 브랜드가 어떤 수명주기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계약만 연장된다면. 아니, 내가 잘하고 또 월 대행비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대행사에서도 초기 브랜드 론칭부터 안정기, 유지기, 제2의 브랜드 프로모션과 첫 브랜드의 쇠퇴까지 해당 흐름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불과 1년 3개월 만에 떠밀리듯, 불안해서 퇴사를 감행했다.



7개의 퇴사사유를 구구절절 나열하는건 면접관도, 나도 곤혹스럽고 변명만 하는 것 같으니. 각 퇴사 경험에서 공통점을 참아 2개 준비하자.


면접을 볼 때마다 ‘각 회사의 퇴사 사유를 말해주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7개나 말하려면 그것도 참 애매하다. 그래서 퇴사 사유를 스토리텔링한다. 퇴사사유는 주로 성장 의지로 채웠다. 혹은 새로운 산업계 홍보(PR)를 하고 싶다거나, B2C를 했었지만 이제는 B2B Tech PR로 확장돼서 하고 싶다는 등. B2C에서 배운 전술과 전략을 B2B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적용해 업계의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포부로 회사를 성장시켜주겠다며 필자를 받아줄 회사를 공략하곤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M대행사에 3년 이상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솔직히, 후회한다. 다양한 회사 경험이 자산이 될 수 있지만, 한 조직에서 브랜드의 전 생애주기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지속하는 성과, 복리로 낼 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또, 대행사에서 제안서를 쓰면서 좀 더 기획력을 다듬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12년 커리어에 후회가 남는다. 물론, 탈출 러시와 존경하는 선배님 후배님들도 곧 탈출하시고 새로 회사를 만드신 것을 보고 - 차라리 일찍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후회하지 않는 퇴사: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위협을 받았을 때

스타트업에 과연 맞는 사람이 있을까.

(정답? 대표.)


스타트업에서 스스로를 갈아서 일하다 보면.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으로 일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알다시피 건강이 최고다. (필자의 스타벅스 닉네임 역시 건강이 최고다. 건강을 한 번 잃은 이후로 만든 닉네임. tmi)


그 당시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를 알았더라면. 조금 덜 책임을 졌더라면 아마도 번아웃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체적인 위협, 그리고 번아웃으로 대변되는 정신적인 한계, 위협은 어떤 커리어의 성장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 건강해야 일도 하지 않겠는가. 최근 META가 인수한 S기업처럼 되고 싶어 했던 한 인공지능 데이터 라벨링 기업에서, 번아웃이 심하게 왔었다. 다행히도 임원분들과 대표님은 나를 좋아해 주고, 또 우리 팀의 팀장님 또한 많이 신경 써주셨지만, 실체가 없는 데이터를 겨우 이해한 뒤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단순히 언론홍보나 콘텐츠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마케팅과 해외 언론홍보까지 업무 SCOPE이 늘어났다.


협업이라 말하지만, 누구보다도 고립된 구조 속에서 일했다. 놀랍게도 뒷소문들은 부드럽게(?) 널리널리 퍼져서 본이아니게 다양한 인간상에 대한 실상을 듣게 되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가치관으로 살고 있지만, 멘탈이 약해지니 쓸데없는 뒷소문에 크게 반응하며 회사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졌다. 게다가, 학력을 비하하거나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 역량이 굉장히 낮고 소위 골 빈 WHITE TRASH로 대표되는, 말만 하고 실체가 없는, 정체모를 이상한 사람과 요점이 없는 회의를 하다 보니 더더욱 지쳐갔다.


결론이 나지 않는 회의는 괜찮다. 다만, 요즘 없이 소통이 안되고 수준차가 너무 크면 배움도 없고 감정의 소모가 커져서 너무 괴로웠다. 특히 나같이 HSP에 가까운 사람은 더더욱 스트레스에 크게 묻혀버린다.


여담이지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되었을걸 -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대로 되는가. 결심을 한다고 감정이 조절된다면 이 세상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조금 받을 것을, 그 이상 내가 overgeneralization 과잉화 하거나 생각을 확장하거나 “나는 왜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서 커리어를 썩히고 있지”라는 생각을 도돌이표 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당시에는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도저히 혼자 컨트롤하기 어려웠고, 책의 도움으로 시야를 넓게 갖거나 대안을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에 - 퇴사를 하고야 만다.


문득 궁금하다. 독자 분들은 나만의 퇴사 기준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신체적, (특히) 정신적 건강에서 적신호가 크다면, 아무리 job market이 얼어붙었다고 하더라도 잠시 쉬어가는 게 맞다. 정말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스스로가 중심이 서 있고, 커리어관이 명확하며 어떤 사람이고 무슨 회사, 어떤 업계에 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계속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건강은 악화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회복도 더디다. 7번 퇴사한 경험자 입장에서, 개인의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조금 더 길게, 멀리 가기 위해서는 - 정신적 번아웃, 육체적 피로 누적은 반드시 쉬어주자.




글쓴이 카리나는..

11년 이상의 글로벌 PR 및 콘텐츠 마케팅 경력을 바탕으로, IT, 헬스케어, 유통산업 분야에서 리드 전환 성과를 창출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커리어는 전문성 강화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이제는 그동안 쌓아온 콘텐츠 마케팅 노하우와 언론홍보 역량을 한 조직에 장기적으로 기여하여, 브랜드 론칭부터 지속까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open to work!


https://litt.ly/karina



keyword
이전 12화7번의 퇴사, 지저분한 이력서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