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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회의만 하면 조용해질까?

팀장이 되면 회의에 대한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건만, 왜 싫죠?^.^

by 카리나
아영 팀장, 의견 없어요?

곤혹스러운 순간은 늘 예상한 때(?) 찾아옵니다.

팀장이 되면 회의에 대한 '면역력'이라도 생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0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회의 =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회의를 즐기는 유형, 가령 대표님, 임원님, 아니면 '말이 곧 일'이라 생각하는 워커홀릭 팀장님이라면...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좋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습니다. 왜 수많은 직장인이 회의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말이죠.)


meme-001.jpg 제발 끝내라... 제발....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내.meeting


선배나 후배가 "아영 팀장, 의견 없어요?" 하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방금 전까지 무사히 회의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조용히 경청하던 제가, 갑자기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무대'에 선 기분이랄까요. (물론 멍 때린 건 아닙니다. 그래도 팀장답게 회의 흐름은 파악하고 있었죠.)


사실 회의를 좇으며 머릿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꽤 있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도 있었고, 우려되는 점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공개적으로 판이 깔리면 입술은 자석에 이끌린 듯 굳게 닫힙니다. 친구들과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고 농담까지 던지는 나. 왜 유독 '회의'라는 무대에만 서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요? 대체 왜 회사라는 특정 집단에서는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이 이렇게 두렵고 눈치가 보이는 걸까요?


회의에서만 유독 조용해지는 당신을 보고 혹시 '내가 문제인가' 걱정했다면, 안심해도 좋습니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결함이 아니라, 집단이 작동하는 생존 메커니즘 때문입니다.






회의에서 침묵을 택하는 이유: 생존 본능?

회의에서의 침묵은 단순히 '의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는 일종의 방어기제이자,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생존 본능인데요. 현대 사회에서 직장은 사냥터와 같습니다. 과거에는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면, 지금 우리는 불이익이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립니다.


회의실에서 발언한다는 것은 '극한의 두려움'과 '심리적 부담'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반박당하거나, 엉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심지어 발언 때문에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두 가지 옵션을 두고 저울질합니다.

의견을 말하고 → 평가와 비난의 위험을 감수한다.

침묵하고 → 안전을 보장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뇌는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하도록 무의식 중에 명령합니다. 회의에서 말이 없는 것은 우리 개인의 소심함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에 '발언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회의에서 침묵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심리적 구조입니다.





회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심리적 안전감'

이러한 두려움이 없는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바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65년에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을 현대 조직 심리학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이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입니다.


에이미 교수님은 저서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이 업무와 관련해 그 어떤 의견을 제기해도
벌을 받거나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정도'

이는 단순히 '편안한 분위기'를 뜻하는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tability)과는 다릅니다. 안정감이 '내면의 흔들림으로부터 안전한 상태'라면, 안전감은 '외부의 관계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상태'를 의미하죠.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조직은 구성원들이 두려움 없이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실수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학습의 기회로 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이런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요?


66fcfe57e263aab9f4a21531_50+ Relatable Meeting Memes to Get You Through 2024.png 놀랍게도 제가 이런 조직을 한 번 경험해 봤습니다. surprise


11년 경력에 7개의 직장을 거쳐 온 저는 딱 한 회사에서 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껴봤습니다. 팀장이어서가 아니라, 그 조직 자체가 의견 개진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견고한 문화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원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높은 책임감을 갖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프로'로 신뢰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최대한 말하지 않는 눈치게임'을 했다면, 그 회사는 놀랍게도 '어떤 타이밍에 적절하게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곳이었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는 현실적인 방법

그렇다면 우리 회의실을 '침묵의 공동묘지'에서 '우리 소통해요~'처럼 소통의 장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다음과 같은 3단계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1. 토대 만들기(Frame the Work): 회의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2. 참여 유도하기(Invite Participation): 리더는 '어떤 의견이든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열린 질문을 통해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3. 생산적으로 반응하기(Respond Productively): 가장 중요합니다. 발언이 나왔을 때, 리더는 즉각적으로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고맙다'는 말로 시작하며 논의의 장을 확장해야 합니다.

자, 말이 쉽죠?ㅎㅎ 실천이 어렵습니다.


제가 했던 방법 중 하나로는... 보통 리더라면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하실 텐데요. 아주 어렵겠지만 먼저 자신의 실수나 잘못 판단했던 부분을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꼰대분들은 좀 힘드시겠네요.^.^)


또,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입을 떼었다면, 시선을 마주하며 적극적으로 경청해 주세요. 물론, 눈을 미친 듯이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요즘 MZ들, 디지털 세대들은 전화 포비아도 있고, 또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감안해, 맞춤형 적극적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세요. 포인트는 부담스럽게 경청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용기 있는 어떤 한 사람이 침묵의 벽을 허물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다른 이들도 입이 터지기 시작할 겁니다.


ylYGAkn.jpg 그냥 넣어봤어요. 회의 없는 회사는 망한 거죠. 지금 회의시간 전에 이걸 보고 있다면... 좀 스트레스 덜으시라고.hahaha


회의의 불편함,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의시간이 조용한 것은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회의실에서 늘 조용해진다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안전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 깨달음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 침묵마저 걱정되어서 뭔가 해야겠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발자국을 뛰는 것이 아니라, 딱 반 발자국만 살짝 움직이는 것입니다. 말꼬만 트자는 의미로, 딱 한마디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용기 있는 작은 목소리는 팀의 침묵을 깨고,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주니까요.ㅎㅎ



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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