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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도 '성취 중독자'?

성공할수록 번아웃되는 사람의 의외의 비밀: 완벽주의

by 카리나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는 11년 차 홍보인입니다. 그런데 커리어에 아주 큰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습니다. 일곱 번의 이직이죠. 한 회사에 평균 1.5년~2년 정도 머물렀던 셈입니다.


첫 회사는 상사의 지독한 괴롭힘 때문에 8개월 만에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그 회사 출신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네요.) 그 탓일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늘 이직의 기준은 '사람'입니다. 흔히 '동료가 복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후, 다행히 좋은 동료와 선배들을 만나 마음껏 역량을 쌓을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 더 고백한다면, 인정욕구가 있는 데다가, 똑같은 실수와 경험을 반복하기 싫었습니다.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고요. '어리버리한데 능력까지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하여, 회사에 입사할 때마다 미친 듯이 저를 쏟아부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직무 공부를 하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어요. 그래야 저의 불안감도 좀 가라앉더라고요. 덕분에 주니어 시절부터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또 나는 다 타버렸다.burnout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몰아붙인 결과는? 예상하셨듯이 딱 1년이면 어김없이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1년이면 4계절이 한 바퀴 돌아서일까요? 회사는 잘하는 사람에게 기회도 일도 더 많이 주기 때문에, 어쩌면 이 또한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스타트업 업계로 이직을 하니, 이 직무도 나의 일, 저 직무도 나의 일이 되더군요.


점점 더 넓어지는 업무 스콥. 스타트업에서는 PR 직무를 초월해 다양한 직무를 커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회사가 날 힘들게 해', '나의 직무와 관련 없는 일까지 하는데, 점점 더 배울 게 없어지는 것 같아'라며 회사를 탓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볼까요? 7번의 퇴사는 모두 오롯이 제 선택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사실 버티려면 버텨내는 게 인간입니다. 다만 저는 패턴이 있었어요. 미친 듯이 몰입해서 성취하고 → 만족한 뒤 번아웃되고 →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패턴.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혹시 내 얘기? '성취 중독'에 몇 개나 해당되시나요?


민망하지만, 저처럼 성취 욕구가 큰 분들은 이 패턴, 아마 이해하실 겁니다.

혹시 당신도 '성취 중독'은 아닌지, 재미 삼아 체크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 ] "이건 제가 할게요"를 입에 달고 산다.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린다)

[ ] 동료와 커피 마실 시간에, 빨리 업무를 처리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 ] "잘했어"라는 칭찬보다 "매출 30% 상승" 같은 숫자로 된 칭찬이 더 짜릿하다.

[ ] 쉬는 날에도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든다.

[ ] 내 성공은 당연하고, 작은 실패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몇 개나 해당되시나요? 축하합니다. 당신도 저와 같은 '성취 중독'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눈치채셨겠지만, 성취와 번아웃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랍니다.


밤낮없이 집에서도 이렇게 일하던 시절.. 뭐 지금도 아직 이렇게 일하는 경향이 남아있긴 합니다.gemini




성취 중독을 만드는

내 안의 두 목소리


데이비드 맥클레랜드(David McClelland)의 이론에 따르면, 성취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낍니다. 이들은

엄청난 책임감으로 무장하고(내가 해냈다!),

과업 완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에('그래서 결론이 뭐죠?'가 입버릇) 조직의 성과에 크게 기여하죠.


ㅋㅋㅋ 진짜 이미지만 봐도 피곤하네요^^?.perfectionist

그리고 혼자 탈진합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성취'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요? 그 뿌리를 파고들면, 우리 안에 아주 오래된 두 개의 '목소리'가 숨어있습니다.

내 안의 완벽주의자: "이 정도로는 부족해. 완벽해야만 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다음 성공, 다음 성과를 향해 달리게 만듭니다.


칭찬을 갈구하는 아이: "칭찬받아야만, 인정받아야만 나는 가치 있어."라는 깊은 믿음입니다. 이 목소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빨리 인정받기 위해 무리하게 자신을 증명하려다 결국 탈진하게 만들죠.


결국 '성취 중독'은 이 두 목소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겁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들들 볶았던 이유, 이제 좀 명확해지지 않으신가요?




성취와 번아웃의 패턴을 깨는 3단계 '성취 재활'


"알겠어요. 그럼 이제 어떡하라고요?"라고 묻는 분들을 위해, 제가 7번의 퇴사 끝에 깨달은 '성취 재활' 3단계를 공유합니다. 성취를 포기하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니 안심하세요.


1단계: 패턴 알아차리기 (feat. 현타)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회사가 문제다'라는 남 탓에서 벗어나, '아, 내가 또 나를 갈아 넣고 있구나'라고 패턴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뜨끔하셨다면, 이미 1단계는 성공입니다.


2단계: '성공' 재정의하기

우리는 성공을 '100m 달리기'와 같은 단거리 전력질주로 생각했습니다. 100미터를 전력 질주한 뒤 녹초가 되는 패턴을 반복했죠. 이제 성공을 '마라톤'으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에게 휴식과 페이스 조절은 포기가 아니라, 완주를 위한 핵심 전략입니다. "쉬면 큰일 난다"는 믿음을 버리세요. 잘 쉬는 것이 다음 성취를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좀 본받으시라고요.pls


3단계: 의도적으로 '엉성해지기' 연습

완벽주의라는 오래된 습관은 한 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엉성해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근데 이 방법은 과연 여러분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대부분의 성취중독자들은 완벽주의자라서, 내려놓는 것을 잘 못하거든요^^....


제가 제안하는 방법, 그리고 실제로 실행 중인 방법은,

보고서 보내기 전, 마지막 확인 한번 덜 하기

퇴근 시간에 맞춰서 과감하게 컴퓨터 끄기

"이건 제가 할게요" 대신, "이 부분은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용기 내어 말해보기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도움 요청하기'입니다. 모든 것을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직급에 상관없이 위임(Delegation)이 필요합니다. 혼자 해결사 뽕에 찬 분들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책임감. 내려놓자고요. (못 내려놓을 거 알아요... 하지만 시도는 해보자고요.) 우리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 있는 작은 균열을 실행하다 보면, '완벽해야만 한다'는 단단한 믿음은 깨질 겁니다.




흑백논리를 벗어나, 나만의 속도 찾기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흑백논리'입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100점 아니면 0점. 우리에겐 중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휴식'은 곧 0점을 향해 가는 '실패'나 '패배'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7번의 번아웃 끝에 제가 깨달은 것은, 이 게임의 규칙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쉴 때 제발 이런거 생각하지 마시고. 알겠죠잉?.jebalyo


진정한 성취는 'All or Nothing'의 게임이 아닙니다. 성취를 포기하라는 말도 아니에요. 100%를 향해 전력 질주하다 방전되는 대신, 80%의 힘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 조금은 엉성하더라도 지치지 않는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8번째 이직 서류 대신 심리학 책을 펼쳤습니다. 100점이 아니면 0점이라는 이 극단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회색 지대를 걷는 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반복되는 패턴의 끝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다. 또 한 번의 완벽한 100점을 위한 전력 질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당신만의 80%를 찾아내는 즐거운 여정을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카리나의 글, 브런치 10주년 팝업전시에서 만나요!

https://brunch.co.kr/@brunch/394?t_src=pc_articleview

오셔서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인증해 주시는 분께 소정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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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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