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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불안하다면

퇴근 후 방전, 주말엔 불안.. 멈추면 무너지는 사람들의 비밀

by 카리나

퇴근 후, 여러분의 ‘쉼’은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당신의 쉼도 두 개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나요? 평일 저녁에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듯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저녁 메뉴 고를 힘조차 없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결국 노트북을 열고 마는, 그런 기이한 모습 말입니다.


스타벅스에 가지 말던가 해야하는데 또 관성처럼 가서 글쓰겠지 카리나.why


제 얘기냐고요? 네, 맞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 아무것도 안 하면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놀아도 되는 걸까? 하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번 연휴에도 결국 불안감에 휩쓸려 아침 일찍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졸음을 깨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 글을 쓰는 '몰입의 상태'로 저를 몰아넣고 나서야 비로소 불안감이 가라앉더군요.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못 견딜까요? 몸은 쉬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마음은 왜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불안해하는 걸까요? 그 단서를 저는 의외의 심리학 이론에서 발견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심리과학이노베이션 대학원의 1학기 수업, 김영훈 교수님의 사회심리학에서 배운 '조절초점'이론에서 질주 본능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되었는데요.


오늘은 히긴스(Higgins)의 '조절초점 이론'과 '자아고갈'을 통해,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당신의 마음엔 '브레이크'가 없나요?

향상초점 vs 예방초점


히긴스의 '조절초점 이론'에 따르면, 우리 마음의 자동차에는 두 개의 페달이 있습니다. 바로 '가속 페달(향상초점)'과 '브레이크(예방초점)'입니다.


가속 페달 (향상초점, Promotion Focus): '성공', '성취', '성장'을 향해 질주합니다. 기회를 포착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동기죠.

브레이크 (예방초점, Prevention Focus): '안전', '안정', '책임'을 중시합니다. 위험을 피하고, 현상 유지를 통해 손실을 막으려는 동기입니다.


두 페달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되죠. 하지만 저처럼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은 '가속 페달'만 너무 세게, 너무 오래 밟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멈춤(브레이크)'은 '안전'이 아니라 '실패' 또는 '퇴보'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헤엄을 멈추면 죽는 상어처럼, '성취'라는 러너스 하이를 계속 느끼기 위해 멈추지 못하고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상어의 인생도 참 피곤하겠어요.tiring


'브레이크'는 고장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멀리, 더 안전하게 가기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사고를 예방해주기도 하죠. 멈춤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동차에도 후진기어가 따로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사람에 대입해 보면, "이대로 가다간 번아웃될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라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 이 현명한 '제동'이 바로 예방초점(브레이크)의 역할입니다.


아, 오해하진 마세요. 향상초점을 취하는 모든 사람이 100% 이렇게 성취중독자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늘 가능성을 엿보고, 확장을 지향하며, 기회를 만들어가는 향상초점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예방초점을 취하는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겁니다. 성과에 몰입하다 번아웃이 더욱 가속화되고 쓰러진다는 이야기예요. 독자분들이 향상초점에 성취 중독이라면, 멈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가속 페달만 밟았을 때 일어나는 일:

'자아고갈(엔진 과열)'


계속해서 가속 페달만 밟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엔진은 과열되고, 연료는 바닥납니다. 이게 바로 '자아고갈(Ego Depletion)'입니다.


우리의 의지력, 통제력, 결정력, 체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한정된 연료'와 같습니다. 8% 남은 스마트폰 배터리를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급속 충전기를 꽂아도, 30% 남았을 때보다 충전 속도는 더디고 배터리 수명은 짧아집니다.


우리의 정신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낮 동안 회사에서 우리는 이 연료를 엄청나게 소모합니다. 평탄하지 않은 하루라면 가만히만 있어도 에너지가 팍팍 줄어드는 경험 해보셨을 갑니다. 다 필요 없고 누워있고 싶은 그 느낌. 그 와중에 꿀밤 때려주고 싶은 상사에게 웃으며 감정 억제를 하고,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모두 소모합니다. 그러니 퇴근 후에는 저녁 메뉴 같은 사소한 결정을 내릴 연료조차 남아있지 않은 겁니다. 그야말로 엔진 과열, 시스템 강제 종료. 이것이 우리가 소파와 한 몸이 되는 이유입니다.






멈출 수 없는 자와 무너지는 자의 악순환


이제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시나요?


'향상초점(가속 페달)'이 우리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고 → 그 결과 밤마다 '자아고갈(연료 방전)' 상태를 맞이하며 무너지고 → 다음 날 아침, 무너진 자신을 보며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다시 '향상초점(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는 것.


저는 이 악순환에 빠져 건강까지 무너졌습니다. 더 소름 돋는 건, 건강이 무너진 자신을 보며 '운동을 덜 해서 그렇다'며 자책하고, 회복을 위해 침대에 누워서는 '뒤처졌다'라고 불안해했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사나 싶더군요.

더이상 휴양지에서도 이러지 마세요 제발.. 즐기라고요. 노트북 너머의 세상을.gemini


악순환을 끊는 의식적인 '제동'은 의도적으로 연습하셔야 합니다. '의지'로 더 버티는 구닥다리(?) 같은 방법은 이제 그만 쓰세요. 오히려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연습을 해야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어요.


나의 에너지가 20% 쯤 남았다고 느껴지면, '시스템 강제 종료'까지 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멈춰보세요. 과열된 '향상초점' 모드에서 잠시 '예방초점' 모드로 전환하는 겁니다. "지금 남은 에너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여기서 더 달리면 내일의 내가 위험해지니, 오늘은 책임만 다하자." 이렇게요.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차가 폭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아끼는 현명한 운전 기술이죠.


성과, 중요합니다. 성취, 아무나 못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인생에서 성취와 성과를 충분히 이뤄낸 사람일 겁니다. 이제는 기억해 주세요. 나의 에너지를 지키는 것 또한, 성취만큼이나 중요한 '성공'이라는 것을.


우리, 오래가야 하잖아요.




카리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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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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