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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쉬어도 피곤한 당신에게

비타민을 때려놓고 운동을 해도 소용없었던 이유?

by 카리나

모처럼 긴 연휴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으신가요?


오롯이 즐기면 될 것을, 벌써 연휴 후의 스트레스를 걱정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불안해하십니다. 주말 내내 쉬었는데 월요일 아침이면 방전된 배터리처럼 몸이 천근만근인 경험, 다들 있으시죠? (사실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하아..)


혹시 최근 들어 '방전'을 넘어 아예 '재가 되어버린' 기분이 드신다면, 오늘 이야기에 주목해 주세요. 요즘 번아웃보다 더 지독한 상태를 표현하는 신조어가 있더군요. 바로 '토스트아웃(Toast-out)'입니다. 말 그대로 토스터기에서 너무 오래 구워져 새까맣게 타버린 식빵처럼, 에너지와 영혼까지 모두 소진된 상태를 말하죠.


오늘은 이 무시무시한 '토스트아웃'의 전 단계이자, 우리에게 더 익숙한 '번아웃'에 대해 제 경험을 곁들여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뇌과학적으로 한번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유노아영, 방전되다

Image_fx (2).jpg 슈퍼히어로도 인간이다. 유노아영이라니... 열정 열정 열정의 인간이었음에 감사한다.gemini

2024년, 직장인 10년 차가 되던 해 저도 장렬하게 번아웃을 맞이했습니다. 한때 회사에서 제 별명은 '유노아영'이었습니다. 열정의 아이콘 유노윤호처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뿜어냈기 때문이죠. 그런 제가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늘 축 쳐진 느낌, 아무리 쉬어도 충전되지 않는 기분. 이게 3개월 넘게 지속되더군요.


결정적으로 정신적인 에너지가 바닥나자, 제 성격마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바스러지고, 동료들의 선의마저 꼬아서 듣게 되더군요. 결국엔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도달했고, 과거의 빛나는 성과들마저 '다 운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렸습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이는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Christina Maslach)이 정의한 번아웃의 3요소를 완벽하게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경험주의자라도 굳이 번아웃을 겪었어야 했을까 싶은데.)

번아웃의 3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서적 소진: 에너지가 고갈되어 열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냉소주의: 일의 의미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방어적으로 변하는 상태.

성취감 저하: 과거의 성공마저 무의미하게 느끼고 자신을 의심하는 상태.


안타깝지만 이 세 가지는 따로 놀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없으니(소진),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고(냉소),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찮게 느껴지는(성취감 저하)- 환장의 콜라보인 셈이죠.




번아웃, 뇌까지 고장 내는 이유

Image_fx.jpg 정말, 원하지 않는데 뇌는 계속해서 돌아가더라고요. 힘들었습니다.gemini

번아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 먹는다고 번아웃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우리 '뇌'가 고장 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뇌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Amygdala)'가 항상 비상벨을 울리는 과활성화 상태가 됩니다.


마치 24시간 사이렌이 울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같죠. 이런 환경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즉 우리 뇌의 CEO가 지쳐서 제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집중력 저하, 판단력 흐려짐, 감정 조절 실패, 즉 '브레인 포그(Brain Fog)'입니다.


저도 작년에 이걸 경험했었는데요.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느낌, 그냥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뇌 기능이 저하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말도 더듬더듬하고, 긴 문장을 말할 수가 없어서 순간 무서워지더라고요.



최고의 치료는 '예방과 관리'.


번아웃 회복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과 다릅니다. 차라리 '무너진 집의 기초 공사를 다시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1년이 넘는 긴 시간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죠. 그래서 번아웃은 '치료'보다 '예방과 관리'가 백 배, 천 배는 중요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예방 전략은 직무 요구-자원 모델(Job Demands-Resources Model)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번아웃은 내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요구(Demands)'가, 내게 힘을 주는 '자원(Resources)'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때 발생합니다. 결국 예방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요구는 줄이고, 자원은 늘리면 됩니다.


스크린샷 2025-10-03 오전 11.43.55.png 저는 no를 잘 말하는데도 왜 번아웃이 왔는지 원...haha

[번아웃 예방을 위한 자원 관리 실전 TIP]

요구(Demands) 관리하기:
- '아니요'라고 말하기: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예스맨'이 되지 마세요. 거절은 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업무 기술입니다.
- 나만의 '방화벽' 세우기: 퇴근 후 업무 연락에 즉시 답하지 않는 등,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물리적인 규칙을 만드세요.


자원(Resources) 늘리기:
- '자율성' 자원 찾기: 전체 프로젝트를 바꿀 수 없다면, 내 책상을 정리하는 방식, 보고서의 글씨체처럼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주도권을 확보하세요.
- '피드백' 자원 요청하기: 막연한 칭찬이 아닌, "이번 기획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나요?"처럼 나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인 피드백을 먼저 요구하세요.
- '관계' 자원 투자하기: 동료와 커피 한 잔 마시며 회사 밖의 이야기를 나누세요. 끈끈한 사회적 지지는 최고의 스트레스 완충제입니다.




번아웃이 와도 괜찮아

(라고 하고 싶지만, 괜찮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이미 번아웃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말이 야속하게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인생에서 번아웃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성장통 같은 거니까요. (하지만 웬만하면 겪지 않으시길 바랍니다.^_ㅠ) 중요한 건 자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해서', '의지가 약해서' 번아웃이 왔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제발. 당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을 뿐입니다.


Image_fx (5).jpg 저 아닙니다. gemini


그러니 지금은 아무것도 하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타버린 나를, 지쳐버린 나를, 애썼던 나를 가만히 안아주세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라고, '이제 좀 쉬어도 괜찮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를 당신 자신에게 건네주세요. 내가 나에게 다정하지 않으면, 누가 내게 다정할까요.


긴 연휴, 부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카리나의 글, 브런치 10주년 팝업전시에서 만나요!

https://brunch.co.kr/@brunch/394?t_src=pc_artic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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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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