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by 칼이쓰

하루 종일 편두통에 시달렸다. 통증이 심할 때면 늘 그렇듯 빛과 소리에 한껏 예민해진다. 핸드폰과 티브이와 형광등, 끌 수 있는 모든 것을 끄고 적막 속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끌 수 없는 것들, 문 밖에 누군가 슬리퍼를 끌고 지나다니는 소리와 옆집의 티브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집에 벽시계를 두지 않았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냉장고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는 어찌할 수 없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샌가 희미한 빛과 소리들에 집중하고 있었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 집 벨이었다. 현관 밖을 비추는 화면엔 모자를 쓴 아저씨가 서 있었다. 다니던 회사의 상사였다. 정확한 나이를 모르지만 적어도 나보다 스무 살은 거뜬히 많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회사 밖에서 오빠 동생 사이가 되자는 말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러자고 한 나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그는 나에게서 실제로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싫은 내색을 하며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집요했다. 모르는 사람이고 싶어서 그의 연락을 외면했는데 어떻게 나의 집 호수를 정확히 알고 찾아온 걸까. 원룸 이백 세대가 모여있는 이곳에서.


그는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몸의 모든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 없는 척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폰은 꺼두었고 시계도 없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한참 후에 돌아서는 발소리를 듣고서야 몸의 긴장이 풀렸다. 16시 31분. 꺼두었던 폰의 전원을 켜자 그의 톡 열한 개가 와 있었다. 확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지 궁금해졌다. 혹시 비행기 모드를 켜고 카톡을 열어보면 숫자 1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지 않을까, 실패였다. 그래, 답하지 않으면 되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열어본 화면엔 근무 시절 내가 앉아 일하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찍은 사진 두 장을 포함한 사진들과 여러 모양의 보고 싶다는 말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밥 한 끼를 하려고 찾아왔다는 말도. 과연 정말 마지막일까. 구역질이 났다. 뱃속의 모든 장기가 베베 꼬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엔 세상에서 제일 큰 종이 들어앉아 있는 듯 종소리가 뎅뎅 울려대고 몸의 기관 여기저기에서 맥박이 퉁탕거리며 뛰었다.


아마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차가운 방 한가운데에 누워 한기를 느꼈다. 눈을 뜨고 감각을 확인했다. 밖은 어두워졌고 옆집 티브이 소리는 더욱 커졌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처럼 커다란 벌레로 변신한 건 아닐까. 다리가 여러 개 달린 큰 벌레는 흉측해서 싫은데...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거리며 무엇이 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리고 섬뜩해졌다. 아직 주변에 그가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봐 이 집에 갇힌 나는 어쩌면 이미 '변신'을 해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카톡', 알림 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그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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