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 있어요
카페 단골손님이 물어왔다.
비가 왔고 함께 우산을 썼고 우산을 그녀에게 완전히 기울였다. 그녀는 그의 팔을 감쌌고 그는 온몸이 경직되어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여자는 누구에게든 그럴 수 있는 건가요?"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그 여자분 마음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호감이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는 회사와 집만 오가다 지난주 삼 박 사 일간 회사 연수를 다녀왔다. 다른 지역 지사의 직원들도 함께 모여 조를 짜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이 터질 듯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지금의 아내에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도 통했고 입을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그녀 역시 그를 좋아하는 눈치였고 그가 무언가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첫사랑과 결혼했다. 평생 아내만 알고 아내만 사랑했다.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예쁜 아이도 있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실 운명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이런 감정일 것이라 짐작했다. 드라마에나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스물여섯의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 않았으리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언가 일을 저지르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숙맥이어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왜 이리 솔직히 털어놓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당황스럽겠지만 너무 답답하고 막막해서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아저씨는 행복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지친 어떤 부분이 두근거림을 너무 갈망했거나."
답이 없는 남자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에요.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 있어요."
그는 미친 척 바람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안 될 일이죠. 그래요, 바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드네요."
아저씨는 에스프레소 투샷이 들어간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그는 나에게 어쩌면 아직 결혼 전이라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었을 거라고, 자신처럼 못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많이 만나고 경험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무엇이 못난 걸까. 순간 마음이 동한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 얼마나 더 지치겠는가. 그렇다고 그가 잘한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남자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직 혼자여서 너그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