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어떠한가
낚시를 네 번 정도 해봤다. 두 번은 물고기를 못 잡았고, 두 번은 잡은 물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낚시를 싫어하게 됐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손맛’으로, 즉 재미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먹고살기 위해서 낚시를 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그때도 물고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은 뒤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혹은 재미를 다 느껴서 다시 물에 풀어준다. 풀어주는 것이 물고기에겐 고마운 일일까? 입이 찢어져 장애를 입은 채 돌아가는 그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다. 누군가의 자녀고 누군가의 부모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어릴 적 만화에서 본 괴물들이 떠오른다.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괴롭히고, 장난 삼아 해치기도 하는 무조건적인 악당들이다. 다만 만화 설정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일뿐이다. 낚시에서는 물고기를 다루는 인간의 모습이 약간은 괴물처럼 느껴진다. 누가 정말 괴물인가? 못생긴 물고기가 괴물인가? 물고기를 재미 삼아 죽이거나 장애어로 만드는 인간이 괴물인가?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는다. 나 역시 낚시할 땐 그랬다. 우리의 애완견을 누군가 그렇게 다룬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겠는가?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한다. 채식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식물도 생명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순 없다. 다만 식물은 썩기 마련이니 먹는 명분이라도 있다. 가축이나 물고기와 관련해서도 고민해 본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기만을 먹는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지금 우리는 가축에서 얻은 고기의 10%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사료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만약 수명이 다한 고기만 먹는다면, 동물을 많이 안 죽이게 되므로, 현재보다 동물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육식에 대한 윤리적, 양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7개월 된 내 아들이 유튜브에서, 젖을 짜는 젖소의 모습을 보고 시무룩해졌다.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젖소의 고통을 느낀듯했다. 아이가 매일 먹는 우유가 젖소로부터 이렇게 얻는 거라고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젖을 짜는 장면도 아이에게는 가혹해 보였을 텐데, “가축을 잔인하게 도살해서 우리가 맛있는 고기를 먹는 거야”라는 말은 더욱 해줄 수 없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떳떳하지 못하다. 동물들을 당연한 듯 괴롭히고 죽이면서 살아간다. 그 동물들을 꼭 괴롭히지 않아도 우린 살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낚시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더 잔인하고 잔혹하다. 그게 나고 그게 우리다.
아이와 동화책을 보며 돼지는 ‘꿀꿀이’, 개는 ‘멍멍이’, 닭은 ‘꼬꼬’라며 귀여운 표현들을 쓴다. 아이는 이 귀여운 동물들의 그림을 보며 즐거워하고, 나도 같이 웃지만 마음 한편이 무겁다. “이 동물들을 죽여서 우리가 먹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동물들을 귀엽게 부르면서, 동시에 인간의 잔인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불교인도 아니고, 특별히 믿는 종교도 없다. 생선과 고기도 가끔 사 먹는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회의감은 점점 커져간다. 충분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시도하지 않는 걸까? 자녀에게 낚시와 도축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