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말려도 재미있어서 멈출 수 없는 거 하나씩은 있겠지?
사랑하는 주원아 주하야,
어제는 2학기 준비를 하기 위해 모든 교직원이 한자리에 모였단다. 종일 바쁘게 일하고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남아서 저녁 늦게까지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 늦게까지 짐 정리를 하느라 분주하던 4학년 2반 선생님이 불 켜진 교무실에 잠시 와서 인사를 하고 퇴근하셨어. 이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했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라.
“교무 부장, 아직 퇴근 안 했어요?”
교장 선생님이셨어. 매주 부지런히 배구 모임에 나가신다는 교장 선생님은 이미 온몸에 땀이 흠뻑 젖어 있으시더라. 그러고 보니 퇴근 전에 운동장에 풀을 뽑으러 나간다 하시며 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개인전화로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운동장에 쪼그려앉아 풀을 뽑고 돌아오셨던 거지.
“이 시간까지 풀을 뽑으셨어요? 그러다가 쓰러지실 수도 있어요.”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아니야. 풀 뽑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대답하시더니 배구 연습 가는 길이라며 나보고도 얼른 퇴근하라고 하고는 주차장으로 걸어가셨어.
교무실 문이 닫히고 잠시 하던 일을 멈췄지. 그리고 생각에 잠겼어. 이 더운 여름 볕에 두 시간 동안 운동장에 돋아난 풀을 뽑는 일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교장 선생님께서 저렇게 신나는 얼굴을 하고 계신 이유가 뭘까?
며칠 전, 2학기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나를 보고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 학교에서 셀프 김밥 데이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마치 소풍가는 날 아침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이었어. 그 기분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더라. 그리고 깨달았지. 교장 선생님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내년 2월 퇴직을 앞둔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 남은 한 학기, 평생 헌신해 온 교직의 마지막 페이지를 추억거리로 가득 채우고 싶으신 거야. 땀 흘리며 하는 노동이 즐거워 봤자 얼마나 즐겁겠어? 밤새 잠을 설치며 손수 김밥 재료를 만들어 와서 직원들에게 김밥 싸는 경험, 나눠 먹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시니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야? 힘든 거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지. 그 속에 뭔가 큰 뜻이 있으니 무리하지 마셔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 말려도 저렇게나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시는 거 아니겠어?
그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많지. 어딜 가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교장의 역할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일인데 교장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몇 시간씩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어.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 학기에 나는 교장 선생님이 추구하는 그 의미에 집중해 보기로 했어. 물론, 내가 교무니까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지. 교장 선생님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지 못하고 지치는 선생님들도 없지 않거든. 그러니 선생님들께 그 어려움이 전가되지 않도록, 내가 교장선생님의 절친이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친해지다 보면 교장 선생님의 신나는 표정 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희들 얼굴에서도 그렇게 신나는 표정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이 모두 힘들겠다고 해도 내가 너무 좋고 신나서 하게 되는 일. 그런 일을 만나려면 의미를 추구해야 하지. 힘들어도 즐겁게 만들어주는 너희들만의 인생 의미를 찾아보는 하루 보내면 좋겠다.
2025. 8. 26.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