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은 거절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주원아, 주하야!
일요일 아침 6시에는 필사 모임을 한단다. 오늘은 <마음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지. 지난번에 한 번 읽은 책이었는데도 처음 읽는 책처럼 새로웠단다. 그땐 어떻게든 이 책을 다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마음에 새기며 읽는 과정이 빠졌었던 것 같아. 오늘은 책장을 넘기며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필사해 보았단다. 거절하기에 대한 챕터가 엄마 마음까지 콕 와닿더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단다. 주변의 칭찬을 받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집의 내가, 오롯이 내 노력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칭찬과 인정밖엔 없었단다. 그래서 슈퍼우먼처럼 살았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사람의 요구에 늘 알겠다고 대답했고 무리해서라도 부탁을 들어주려 노력했어. 그렇게 살다 보니 혼자 있는 순간이 제일 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변에 누가 함께 있으면 또 거절하지 못할 부탁 몇 개쯤은 생길 테니까, 그때마다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줘야 하니까, 나는 귀찮고 성가시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행동했지. 그러다 보니 사람과 가까이 지낼 만한 상황은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어. 참 아이러니한 게, 그러면 그럴수록 주변에 사람이 들끓었지.
약속을 정하고, 부탁을 받고, 그 모든 걸 완벽하게 해 내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힘들었단다. 그런데 그거 아니? 부탁을 들어줄 때보다 더 힘들 때가 있었다는 사실. 바로 부탁을 거절할 때였어.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나는 마치 약점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굽실댔단다.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읊어대면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었지.
그런데 오늘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지 뭐니?
'무언가를 거절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제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엄마는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 칭찬받고 싶은, 모든 일에 나를 정당화하려고 드는 철없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나 봐.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그들에게서 부탁받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소하고 거절하는 사람이 있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해. 거절하는 순간마다 나를 정당화할 필요 없이 평소의 내 모습으로 증명해 보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람을 소중히 하는 나, 약속을 잘 지키는 나, 힘든 일 마다하지 않는 나, 내 것 챙기려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못 본 척하지 않는 나. 평소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나의 거절에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주겠지. 거절하지 않고 나를 소모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나의 거절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 앞으로는 거절하면서도 빚 지은 사람처럼 비굴한 핑계를 늘어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드는구나.
좋은 책을 읽고, 내 마음을 글로 쓰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부쩍 느끼는 요즘이야. 주원이, 주하도 엄마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
2025. 8. 17.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