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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19. 2020

메뉴판의 재발견

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첫 번째 식사

여동생과 단둘이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동생은 유럽에 가보고 싶어 했고, 나는 파리에 가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어서 여행지는 자연스럽게 파리로 정해졌다. 이왕 프랑스로 가는 것이니 항공사도 프랑스 항공사를 선택했다. 비행기를 타면 제일 기대되는 것이 기내식이다. 그런데 기내식을 받기 전에 승무원이 메뉴를 줬다. 메뉴에는 이 항공기를 타는 동안 먹게 될 기내식 메뉴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나에게 메뉴판이란, 음식점에 들어가면 시킬 음식을 고르기 위해 주는 선택지이다. 그래서 메뉴 선택권이 별로 없는 비행기 안에서 '너는 앞으로 이런 음식을 먹게 될 거야'라고 정보를 알려주는 용도로 메뉴판을 주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웠다. 메뉴판은 영어, 불어, 한국어로 되어있었다. 음식에 대해서는 항상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프랑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메뉴판을 보면서 기내식이 나올 때 프랑스 요리를 먹을 것인지 한국 요리를 먹을 것인지 미리 고를 수도 있었지만, 메뉴를 미리 보는 것은 기내식을 먹는 시간을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기내식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기정사실이지만, 메뉴를 보고 나면 '조금 있으면 식전주로 샴페인이 나오겠지. 그다음에는 닭고기 요리와 야채, 와인이 나올 거야.'라는 기대감이 생겨서 마음이 설렜다.


미리 너무 많이 알아버리면 기대와 설렘이 줄어든다고 흔히들 말한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세계 각지의 영상을 많이 볼 수 있어, 안방에서 세계여행을 할 수 있으니 굳이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블로그로 여행지에 관한 정보나 사진을 너무 많이 보면 실제로 여행을 갔을 때 재미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객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아는 것 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알수록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도 있다. 오히려 몰랐을 때는 없었던 원함이 생긴다. 메뉴를 통해 앞으로 나올 식사에 대한 정보를 읽으면 식사가 더 기대되는 것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글자로 보이는 이 음식이 실제로 먹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러니 메뉴는 식사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파리 여행을 다녀온 후 연말에 가족을 위해 크리스마스 식사를 준비했다. 이때 파리행 비행기에서 새로 발견한 메뉴의 효과를 이용해보았다. 이전에도 여러 번 만들었던 음식인데도, 그 요리들을 글자로 적어서 메뉴판을 만들어 식사 전에 식탁에 올려놓으니 식구들이 식사를 더 기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요리가 더욱 즐거웠다. 컴퓨터로 5분 만에 작성해서 프린트한 작은 종이 한 장이 작지 않은 이벤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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