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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21. 2020

90년대생과 먹는 스테이크

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두 번째 식사

여동생과 나는 나이가 8살 차이 난다. 동생이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 이후로 우리는 쭉 떨어져 살아왔다. 물론 친하게는 지내왔지만 함께 길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여동생과의 파리 여행을 계획한 것도, 파리를 가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동생과 시간을 보내며 동생이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를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80년대생이고 여동생은 기존 인류와는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요즘 그 유명한 90년대생이다. 이 90년대생 여성은 일단 여행 기간 동안 매일 다른 옷을 입을 계획으로 짐을 싸왔다. 옷은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과 같은 원색이 많았다. 사진에는 원색이 잘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파리에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몇 개의 인증샷을 제외하고는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동생은 여러 가지 포즈로 자신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현명했다. 파리 풍경 사진들은 관광책자에 수두룩하게 나온다. 나는 왜 남들이 찍은 사진과 같은 사진을 굳이 재생산하고 있을까. 나중에는 나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사진에는 파리는 배경이고 본인이 주인공이었기에 아주 사적이고 특별했다.


파리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먼저 에펠탑에게 인사를 한 후 첫 식사를 했다. 파리에서의 첫끼를 먹기 위해 눈에 들어온 숙소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미리 공부해온 프랑스 요리들을 맛볼 생각으로 메뉴판을 봤는데, 예상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스테이크였다. 정확히 말하면 스테이크의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식당에 가면 스테이크 메뉴는 다른 메뉴에 비해 가격이 두세배 정도 된다. 하지만 파리 식당에서 메뉴 가격을 쭉 비교해 봤을 때 스테이크 가격이 다른 요리들에 비해 크게 높지 않았다. 파스타 가격과 비슷한 식당들도 있었다.


다른 음식들과 가격이 비슷하면 당연히 스테이크를 먹어야지. 긴 비행 끝에 체력이 소진된 우리에게는 고기가 필요하다며 웨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걸어오는 웨이터를 보면서 그래도 영어를 좀 하는 내가 동생을 위해 주문을 해줘야지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할 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어떤 표현을 썼더라? 문법은 이게 맞나? 그래도 프랑스인데 인사라도 불어로 하는 게 예의일까? 이 시간에 불어로 어떻게 인사하지?'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는 동안 웨이터가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동생이 씩씩하게 영어로 주문을 했다. 동생의 씩씩함에 웨이터도 밝게 화답을 하며 주문을 받았고 그렇게 내 눈앞에서 우리의 첫 주문이 끝났다.


내 눈앞에 있는 90년대생은 나보다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인류였다. 내가 말을 잘해야 한다, 예의 바르게 해야 한다, 문법이나 어휘가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90년대생은 이미 즉시 떠오르는 단어들과 손발의 조합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 밝음과 적극적인 에너지는 상대방에게도 바로 전달이 되어 그 사람이 기분 좋게 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우리는 파리에서 첫 식사를 했다. 굽기 정도 같은 건 물어보지 않고 주방장의 소신껏 구워져 나온 스테이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지만, 같이 곁들여서 나온 시큼한 맛의 소스에 찍어먹으니 느끼함이 잡혀서 김치가 없어도 괜찮았다. 이 가격에 이 정도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면 파리에 있는 동안 꼭 한 번은 더 스테이크를 먹자고 동생과 약속을 했다. 파리에서 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누가 나에게 파리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꼭 스테이크는 먹으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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