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다섯 번째 식사
정말 빵이 주식이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한식을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밥을 먹고 자랐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해외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머니는 한국 배추로 김치를 담그시고, 꽁치를 구워주시고, 흰쌀밥을 지어주셨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비스킷 도우에 단팥을 넣고 쪄서 찐빵을 만들어주시고, 오징어를 사서 젓갈도 손수 만드셨다. 그렇게 거의 매일 한식을 먹었기에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빵만 먹고사는 것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과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가는 식당마다 거의 바게트 빵이 나왔다. 나는 바게트가 프랑스인들의 아침식사 빵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침에만 먹는 빵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모든 식사에 나오는 공깃밥 같은 존재였다. 아침에는 어슷 썬 바게트를 구워서(이를 '타르틴(tartine)'이라고 한다) 잼을 발라 먹고, 점심때는 가로로 길게 잘라 햄, 치즈, 야채를 넣어 샌드위치로 먹고, 저녁에는 메인 요리와 함께 식사빵으로 먹는 식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아침마다 바게트를 산다고 한다.
이렇게 유명한 바게트이기에 파리 여행 중에 현지에서 바게트를 직접 사먹어보고 싶었다. 제빵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유명한 바게트 맛집을 찾아 가보려고도 했지만, 동선을 아무리 고민해봐도 빵을 먹게 되는 시간이 애매했다. 맛있는 바게트를 꼭 사먹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검색을 한 결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답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바게트는 오전 7시에 집 근처 빵집에서 사는 갓 구운 바게트라고 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마침 여동생과 묵고 있던 호텔 근처에 빵집이 있었다.
어차피 시차 때문에 계속 새벽에 잠이 깼다. 일찍 눈뜬 김에 조금 기다렸다가 7시가 되면 바게트를 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을 깨우지 않고 사오려고 했지만, 동생이 눈을 비비고 일어나더니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는 대충 옷을 입고 빵집으로 갔다. 파리의 가게들은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곳이 별로 없지만, 빵집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도 들어가서 바게트 하나를 샀다. 값은 1유로 정도, 공깃밥 또는 햇반 하나 가격이었다. 바게트 빵을 들고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바게트를 뜯어먹었다. 버터가 들어있지 않은 담백한 빵이지만 맛이 심심하지 않고 고소하고 든든했다. 동생과 같이 긴 바게트를 하나를 다 뜯어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밥순이인 나지만, 이런 빵이라면 주식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빵을 주로 간식으로 먹고, 바게트, 크루아상, 케이크 등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베이커리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빵을 구분해서 먹는다고 한다. 식사나 평일 아침으로는 버터가 들어있지 않은 담백한 바게트를 먹고, 크루아상이나 브리오슈와 같이 버터가 많은 빵은 주로 주말 아침에 먹는다고 한다. 달콤한 케이크, 타르트, 에클레어 등은 간식으로 먹거나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한다. 판매하는 곳도 다르다. 바게트나 크루아상, 브리오슈와 같은 빵은 불랑제리(boulangerie)에서 팔고, 케이크나 과자류는 파티세리(patisserie)에 가야 살 수 있다.
주말은 아니었지만, 하루는 여동생과 불랑제리에 가서 바게트가 아닌 크루아상과 마들렌을 사서 먹었다. 프랑스 사람처럼 커피를 먹어보겠다고 불랑제리에서 파는 커피를 작은 사이즈로 한잔씩 시켰다. (유럽에서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으면 우리가 아는 아메리카노는 마시기 힘들다.) 커피 양이 정말 적어서 놀랐다. 한 모금이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양이었지만, 너무 진해서 한 모금에는 절대로 마실 수 없었다. 크루아상은 버터가 듬뿍 들어있어서 입으로 베어 먹으면 소리가 날 정도로 식감이 바삭했다. 좋은 버터를 썼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주중 아침은 속이 편하고 든든한 것으로 먹고, 주말에는 한 주 동안 수고했다는 뜻에서 이렇게 버터가 풍부한 리치한 빵을 먹는 것도 크루아상 하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생활방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