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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ul 13. 2020

착즙 오렌지 주스 같았던 우리 여행

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마지막 식사

파리 여행 동안 묵었던 숙소 앞 슈퍼에 착즙 오렌지 주스 기계가 있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오렌지 주스 담을 병을 하나 받았다.  병을 착즙 주스 기계 밑에 두고 버튼을 누르니  앞에서 오렌지가 착즙 되는 과정을   있었다. 기계가 투명해서 오렌지 하나가 굴러와서 착즙이 된 후 오렌지 하나  굴러오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이렇게 병이  때까지 3-4개의 오렌지가 사용됐던  같다. 착즙 과정에서 오렌지 즙이 튀어 상큼한 냄새가 났다. 다른 재료는 조금도 첨가되지 않은  그대로 100% 착즙 오렌지 주스였다.


파리 여행을 가기 전 프랑스 요리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화려함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하러 갔을 때 안내해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루이 14세가 워낙 음식을 좋아해서 같은 요리를 두 번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궁중요리사들이 매번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야 했고, 이때 프랑스 요리가 화려해지고 음식문화가 크게 발전했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프랑스 요리에 대한 이미지는 이 화려한 궁중요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파리에 가서 경험한 음식들은 최소한의 가공과 요리가 된 음식들이었다. 화려한 요리도 많겠지만 내가 먹은 서민적인 음식은 두툼한 고기를 그릴에 구워 간을 거의 하지 않은 튀긴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 드레싱 없이 바게트 안에 햄, 치즈, 양상추만 들어간 샌드위치, 당류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과일주스와 같은 음식들이었다. (심지어 프랑스 항공 기내식에서 준 딸기잼도 내가 알던 딸기잼보다 설탕이 적고 딸기 맛이 많이 났다.) 음식의 본질인 재료의 맛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요리를 하기 귀찮아서일까. 아닌 것 같다. 재료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에 더 꾸밀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대단한 자신감이고 편안함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의 직업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내가 만들어온 평판과 이미지에 나를 일정 부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의 터전을 떠나 해외에 가면 나를 둘러싼 후광 같은 환경적, 사회적 요인들이 사라지고 나라는 본질만 남는다. 그 모습과 스스로 마주하고 함께 간 동생에게 보여주며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나만으로도 괜찮은 걸까'하는 두려움의 시간을 넘기고 며칠을 지내다 보니 이대로도 괜찮은 사람, 가족, 동반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조금씩 나를 더 편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오렌지만으로도 충분히 달고, 상큼하고,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는 착즙 오렌지 주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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