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annie Apr 25. 2020

타지에서 먹는 라면

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여덟 번째 식사

여동생과 파리 여행을 간 지 나흘째였던 것 같다. 라면을 먹을 때가 왔다. 양식을 좋아하는 우리지만, 이제는 라면을 먹어야 했다. 캐리어에 챙겨 온 컵라면 두 개와 나무젓가락 두 벌을 꺼냈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컵라면 용기에 부었다. 뜨거운 물과 라면스프가 섞여서 나는 냄새부터 반가웠다. 삼 분이 지난 후 뚜껑을 뜯고 라면을 먹으며 동생과 나는 계속 감탄을 자아냈다. 라면 국물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느끼한 음식을 먹어서 매운 것이 당기기도 했지만, 매운 것보다 더 그리운 것은 국물이었다. 서양에는 마른 음식이 많고 국물이 별로 없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도 속이 덜 풀린 기분이었다. 파리 호텔방에서 라면을 먹었던 이 날처럼 라면 국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었던 적은 처음이다.


내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태어난 곳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미국 생활을 했을 때 한국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 미국  한인마트에서 빼빼로나 칸쵸를 보고 반가워할 때, 나에게 그 과자들은 처음 본 것들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한국에 온 이후로 지금까지 해외 연수나 유학도 가지 않고 쭉 여기서 살아온 나는 이따금씩 어렸을 때 미국에서 먹었던 맥도날드 치즈버거는 찾는 일은 있어도, 정작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걸리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라면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던 이 날에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에서 라면을 먹었을 때만 한국을 그리워한 것은 아니었다. 요즘 여행이나 출장차 해외에 가면 케이팝 가수들이 나오는 전광판을 보거나 거리에서 한국 가요가 들리기도 하는데, 파리는 문화적 특성이 워낙 강한 도시라 그런지 한국 대중문화를 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파리에서 계속 한국을 생각나게 했던 것은 곳곳에서 보였던 무궁화였다.  


파리를 구경하면서 놀랐던 점은, 우리나라에서보다 무궁화 꽃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도 곳곳에 무궁화가 많이 피어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무궁화를 재배하는 곳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궁화 꽃이 벌레가 많이 생겨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무궁화 꽃을 반갑게도 파리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무궁화는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정원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냥 지나가다가 본 일반 정원뿐만 아니라 유명한 관광장소의 정원에서도 볼 수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당하기 전에 구금되었던 감옥인 콩시에르쥬리에서 여성 수감수들이 산책을 했던 공간의 작은 정원에서 흰 무궁화를,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 정원에서는 보라색 무궁화 꽃을 볼 수가 있었다. 여동생이 반가워하며 무궁화를 사진에 담았다. 이렇게 타지에서 만나면 너무나도 반갑고 아름다운 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무궁화를 공공기관이나 초등학교 정원에 상징적으로만 심지 않고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네의 정원(좌)과 콩시에르쥬리(우)에서 만난 무궁화



이전 07화 힐링푸드의 원조를 찾아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