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annie Jul 13. 2020

집밥은 집밥이로구나

자매의 파리에서 삼시세끼: 열한 번째 식사

여동생과 함께 간 파리 여행 끝자락 즈음에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르 프로코프(Le Procope)'를 방문했다. 이 날 나의 여행 테마는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영화 '비포선셋'에 나온 영어 책방에서 책도 사고, 트렌디한 잡지와 아트북들을 모아놓은 서점도 구경했다. 르 프로코프는 나폴레옹과 볼테르 등 유명한 정치인과 작가들이 정치에 대해 논하고 글을 썼던 카페로 유명하다. 그래서 책방을 구경한 날의 저녁식사를 르 프로코프에서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게 느껴졌다.


르 프로코프는 과거에 커피와 차를 파는 카페였는데, 이제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프랑스 가정식부터 고급 요리까지 메뉴가 다양했다. 프랑스 가정식을 맛보고 싶었던 나는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와 양파수프를 시켰다. 그리고 동생이 서양 생선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가 개발했다는 리조또를 곁들인 생선요리를 시켰다.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프랑스는 음식을 여러 가지 시켜서 나눠먹는 문화가 아니라 나눠먹고 싶다면 접시를 달라고 따로 부탁을 해야 했는데, 이 식당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해서인지 주문한 메뉴를 서빙하면서 앞접시도 같이 줬다. 프랑스 가정식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달팽이 요리를 하나 먹었다. '익숙한 맛인데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 뒤에 앉아있던 한국인 여행자들의 대화에서 "골뱅이 같아"라는 말이 들렸다. 정말이었다. 골뱅이를 먹는 기분이었다.


양파수프는 비가 자주 오고 쌀쌀했던 파리 날씨를 겪은 우리에게 따뜻함을 선사한 음식이었다. 양파의 달달함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서 살린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요리에 양파가 들어가지만 양파가 주재료인 요리는 잘 없다. 하지만 양파수프를 먹으 양파도 요리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히 맛있는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맛과 매운맛을 모두 가진 양파가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익숙한 재료에 국물요리였기에 처음 먹어봤음에도 포근한 집이 생각났다. 나는 지성인들의 기를 받기 위해 이 곳에 왔는데 식사를 하면 할수록 집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생선요리를 먹으면서 겨우 잡고 있었던 냉철한 지성인 코스프레는 무너졌다. 생선살을 먹는 순간 동생이 "언니, 마산의 맛이야."라고 하며 오랜만에 입안에서 느껴지는 개운함에 감격했다. 우리 자매는 마산 사람이다. 부모님 뵈러 마산에 갈 때면 마산 어시장에서 각종 싱싱한 생선을 사서 요리를 해주신다. 반가에 신나게 생선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집 얘기를 하게 되었다. 여동생과는 성인이 된 후로 다른 지방에 떨어져 지냈기에 우리의 파리 여행은 정말 오랜만에 보내는 둘만의 시간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이야기도 하면서 일주일 간의 파리 여 중에 느낀 점 서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역시 집밥은 집밥이로구나. 처음 먹어보는 다른 나라 음식인데도 집밥의 힘은 타지에서 긴장하고 있었던 나의 몸 풀어주고 마음을 열어줬다. 지성인은 무슨, 집에 가고 싶다.

이전 10화 이태리 음식은 파리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