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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26. 2017

지식, 힘 또는 병

연애법 스물두째

1.

현재의 많은 부분은 과거에 종속되어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마음을 기껍게 나누고, 누구를 경계하는지 등 자아와 타자를 향한 태도와 행동 대부분이 과거에 연유한다. 과거는 자신을 만들었고, 타자의 격랑 속에서 자신을 지켰으며, 어떤 이와 사랑으로 맺어 자신으로 하여금 외로움을 떨치게 했다.


그런데 과연 과거는 나를 지키고, 외로움에서 나를 구해주기만 한 것일까? 나를 지킬 기회를 잃게 만들고, 나를 외로움에 던져버렸던 것은 아닐까?



2.

과거는 경험의 소산(所産)이며, 기억의 통로를 거쳐 현재로 전해진다. 경험은 자신이 그때, 거기서, 무엇을 했고, 어땠는지, 에 관한 서사(敍事)이다. 경험의 서사 중 어떤 서사는 망각되지 않고 기억되기로 선택되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로 이어진다.


과거에 만들어지고 기억되어 현재로 이어진 경험의 서사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 나아가 자아의 모습을 결정한다. 상처받아 멀리하고, 존중받아 가까이 둔 것에 대한 경험이 기억으로 삶에 면면이 이어져 인간으로서의 진퇴(進退)를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지향(志向)하는 방향으로 심도(深度, depth of field)가 깊어지며 명확한 태도와 행동을 가지게 되고, 회피하는 방향으로는 심도가 얕아지며 무관심하게 되어 무엇인지 잘 몰라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할지조차 생각하지 않게 된다. 지향과 회피의 경험이 쌓여 취향이 생기고, 일정한 의도(욕망+신념)*가 만들어진다.

[*. 데이빗슨(Donald Davidson)은 행위(action)의 설명이 욕망(desire)과 신념(belief)의 쌍, 곧 의도라고 본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은 경험은 회피와 애정의 대상을 결정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를 제공한다. 상처를 준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서 앞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고,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든 사람의 그것들로부터는 사랑을 쏟아도 된다고 믿을만한 사랑의 징표가 무엇인지 찾게 된다. 그러므로 과거의 경험, 기억으로 오늘에 전해진 경험의 서사를 관계를 이끄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과거의 경로를 따라 사랑하는 습관이 생긴다. 과거의 경험이 기억으로 전한 ‘지식’에 우리가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는 방식,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현재의 경로를 만드는 일은 많은 경우에 과거의 경로를 답습하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가 과거의 것에 대한 지향이라면, 후자는 과거의 것에 대한 회피인 것이다. 어떤 선택도 '더 먼 과거'에서 '과거'로 이어진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로부터 온 ‘지식’의 유용성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는 과거의 지식을 토대로 지향하고 회피하면서 좀 더 나은 경로를 찾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지식이 결정적인 순간에 현재와 미래의 진전을 무산시키는 일이 너무 잦다. 경험 속 타인의 행동이 신뢰를 깬 결과를 낳았다면, 지금 겪는 그 행동을 신뢰가 깨진 과거의 결과와 (충분한 근거 없이) 연접(連接)시켜 상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반대로 경험 속 행동이 충만한 사랑을 경험하게 했다면, 지금 그 행동을 사랑과 연결하여 과잉 해석하여 상대의 마음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 자신과 상대의 자율성을 떨어뜨릴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지향보다 회피의 유용성이 더 의심될만하다. 지향은 뜻밖에 사랑할 기회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몰랐던 사소한 행동이 나에겐 사랑에 빠지는 결정적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회피는 유용성이 의심된다. 지식을 믿고 현재 상황에서 회피하려고 할 때, 상대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대의 행동이 유발할 거라고 자신이 믿는 상황을 피하려는 행동에서 상대는 '무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별 남자, 별 여자가 없다지만, 모두가 다 같은 것은 아니며, 회피 행동은 상대에게 의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측한 위험을 피하려다 예상 밖의 사랑에 충만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4.

과거로부터, 과거에서 온 지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고, 벗어나려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지식이 지금에 이를 때까지 상대가 줄지 모르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더 나은 상대를 만나 충만한 사랑을 경험하게 만드는 데 중요하게 기능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은 자신을 보호해준 만큼이나, 기회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과거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 과격하지만 연애하기를 원하지만 혼자인 이유, 연애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가 이러한 사실의 많은 부분을 입증한다.


지식으로부터 배타적일 필요는 없지만, 자유로울 필요는 있다. 지금 내가 연애하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과거의 인연이 취한 그것과 많이 중첩되더라도 지금의 그는 분명히 예전 그 사람과는 분명히 다르므로 과거 경험으로 쌓인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서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모든 백조가 결코 희지는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즉 현재의, 혹은 잠재적 상대를 일반명사인 사람 중 하나로 대하려는 생각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낯설 수밖에 없는 상대를 과거의 지식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낯선 만큼 새로운 사람으로 대하며, 관찰하고 해석하여 그 사람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연애의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껏 살면서 내 곁에서 떠나보낸 사람이 돌이켜봤을 때 잘 피한 것이 아니라, 과거 지식의 망령에 휩싸여 의도적으로 놓쳐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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