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Aug 08. 2020

루틴(routine)

나를 나답게 하는 것

삶은 언제나 요동친다. 어느 날 갑자기 풍랑(風浪)이 일어 오랫동안 꿈꾸던 삶이 전복되기도 하지만, 언제 높은 파도가 일어났냐는 듯이 금세 고요한 잔물결이 쳐 순항(順航)을 계속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삶이란 바다 위에서 잔잔한 물결 위에서 몸을 일으켜 저 먼 대양을 바라본다. 그러나 삽시간에 고개를 숙여 발끝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는 한다.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심을 잡는 것마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시선이 발끝만을 향할 때 우리는 순간 위험에 빠진다. 먼 곳을 보지 못하면 중심을 쉽게 잃기 때문이다. 대신에 앞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것으로 우리는 흔들리는 중심에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삶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바라봐야 할 지점은 다름 아니라 자신, ‘나다움(I-ness)’이다. 발끝에서 나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은 나다움은 오직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보이기 때문이다.


나다움을 지키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는 한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서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적응’이란 한편으로는 타인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 속에서 비슷하게 표정 짓는 행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출근할 때 반쯤은 자신을 집에 두고 나간다는 어느 시인이 쓴 시(詩)의 한 구절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오롯하게 나다운 삶을 지키기 힘든 우리들에게 던져진 숙명의 애달픔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의 말처럼 문밖으로 나서면서 자신의 절반만을 가져가기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무엇하나 허투루 다룰 수 있는 있는 문제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마음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물론 삶에서 당면하는 모든 문제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대개는 그저 지나쳐버려도 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초심자(初心者)로서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우리들은 삶의 문제에서 경중을 따져 힘과 시간을 쏟을 적절한 지점을 찾는 통찰력이 부족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힘을 적절히 들이고 빼는 완급조절에 아직 능숙하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상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의 반복적인 패턴을 의미하는 ‘루틴(routine)’이다. 생활을 잘 들여다보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패턴과 스스로 정한 몇몇의 원칙을 찾을 수 있다. 몇 시에 일어나고, 무엇을 먹는가에서부터 어디에서 쉬고, 일할 때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가에 이르기까지. 삶을 단순하게, 또 반복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들이다. 루틴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길 바라는 도전하고, 변화하는 역동적 삶을 훼손하는 위협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그러나 루틴은 우리가 이루어가고 있는 삶의 뼈대가 된다. 버틴다. 혹자는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존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삶이 던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노고(勞苦)의 총량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그 총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부터 가해지는 여러 가지 압력에 굴하지 않도록 버틴다. 그것은 나다움을 훼손하지 당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버티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긴 다음에 그 영향을 방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훼손되지 않을 삶의 방식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것, 체력을 기르기 위하여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은 생활의 루틴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지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 또 정해진 일상으로 돌아오며, 잃었던 회복탄력성을 의도적으로 복구하는 과정도 된다. 루틴이 정해져 있는 한 생황에서 언제고 돌아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밤 힘들어도 출근해야 하고, 때로는 일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도 된다. 요컨대 위기에 당면해서 나답지 않은 결정을 피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인 것이다.


루틴은 ‘나다움’을 훼손하려는 바깥의 위협을 막기만 하는 소극적(negative)인 자기 방어의 기제만은 아니다. 루틴은 목표한 바를 향한 노력이기도 하다.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가질수록 우리는 삶을 단순화하고 목표에 이르기 위한 행동들로 생활을 꾸려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가 있다. 생활을 단순화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꾸준히 반복하는 행동을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몇 시간 간격으로 다른 책을 번갈아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론컨대 우리는 계속된 행동을 통해서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노력의 총량을 빠르게 채울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루틴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스스로 도달하고자 다짐한 ‘나다움’에 대한 적극적인 지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대개의 아침 풍경. 매일 아침 글을 쓴다. 논문을 쓰고, 이따금 메모한 것들에 살을 붙여 에세이를 쓰거나, 시도 쓴다. 글을 쓸 시간을 못 만드는 것으로부터 생활에 대한 내 게으름을 진단하고, 글을 씀으로써 어제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같은 감정적 잔여물을 긁어낸다. 그리고 오늘을 산다. 그렇게 만들어 둔 루틴들이 나의 일상을 채운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의 변화가 의심스러울 때, 그래서 우리 자신도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때, 우리는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다움’을 살피는 것의 첫 번째는 생활을 살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으로부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어렴풋하게 파악할 수 있고 생활은 우리가 한 행동의 자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과거와는 다른 행동을 했는가를 통하여 변화를 감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틴은 나다움의 기준점이다. 한편 루틴은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애써온 시간 동안 만들어진 노고의 결과물이다. 삶이 던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시간과 힘, 감정에 여유를 두는 것 그것이 루틴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유를 두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