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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26. 2022

검은색 신발

일탈의 보루

검은색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심심한 일상에도 반전을 위한 보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홍색 바지도, 벽돌색 바지도, 파란색 바지도 입지 않는 지금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는 ‘일탈’의 보루가 신발이다. 물론 예전처럼 별나다 싶은 색이나, 모양을 가진 신발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발마저 희고, 검은 것으로 신으면 슬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은 날, 발이 불편하기 싫은 날 신을 것으로 한두 켤레 갖고 있을 뿐이다.


신발장에 꽂힌 각양각색의 신발만큼이나 내 생활도 조금은 흥미로 채워지기를 기대하면서, 생활에서 필요한 것 이상으로 신발을 갖고 싶어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발은 운명에 관한 메타포(metaphor)라고 했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혼인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Oedipus)의 이름은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오이디푸스는 발목에 상처가 나서 퉁퉁 부어 정상적으로 걷지 못한 신체적 삶처럼,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살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발에 의미를 채우고 혹은 묶으면 내가 두려는 의미가 내 삶에도 조금은 묻어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다. 그래서 심심할 것 같은 삶에 색을 더할 현란한 색이나, 모양이 특이한 것을 굳이 선택하곤 했던 것이다.


근래 몇 켤레의 신발을 샀다. 그리고 신발을 사면서 제일 고민했던 신발이 오늘 신은 검은색 이 신발이었다. 근래 많은 사람들이 신는 브랜드의 것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편하고 조금은 차분한 것으로 하나 더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중이라 적당하겠다 생각하여 새로 들였다.


신발 겉을 감싸는 자루 같은 모습이 지루하지 않다. 신발을 사 신으면서 작은 기대를 품었다. 검은색처럼 고요하지만, 실용의 바깥에 있는 듯하지만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모양 같은 생활이 내 일상에도 붙으면 좋겠다는 그런 기대 말이다.


누구에게나 생활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 때로는 그것은 취미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이 있어야 삶에 싫증 내지 않을 수 있고, 삶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더라도 붕괴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내게 새 신발을 찾고, 사서 신는 행위는 가끔 생활로 잊은 내 다른 방향을 상기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것으로 아주 가끔은 여러 문제를 뒤에 둔다. 생활의 방향대로만 살면 앞에 두기만 했을 문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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