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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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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08. 2023

입동

시를 읽는 새벽

겨울에 들었다. 해가 오르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에 일어나, 얼마 전부터 느낀 겨울의 기운이 얼마나 더 짙어졌는지 창문을 활짝 열어 확인했다. 마르고 찬 바람이었지만, 날카롭지는 않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냉기가 스미는 창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근래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일 때, 도무지 그 바람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이해하려고 그간 배운 것들과 읽은 것들을 짜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모든 것이 신의 섭리이기에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자 생각하지만 신앙이 없어 신앙생활처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읽는 시집을 짧은 시간 동안 읽으며 금년 첫, 새 겨울 아침을 시작했다. 


삶이라는 서사의 덩이를 깎고, 갈아내서 말의 작은 덩이에 마음을 크게 담은 문자를 읽었다. 내가 설게 아는 시인은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곱고 따뜻한 빛을 시에 담을 수 있었을까, 오늘도 감탄했다.



우울한 기분으로 먹구름을 몰지 마라

체념한 걸음으로 지구 위를 끌지 마라

냉랭한 마음으로 눈보라를 일지 마라


(중략)


타인의 시선에 반쯤 눈감아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

상처받고 실망하는 걸 웃으며 견뎌내라


- 박노해, "행복을 붙잡는 법." <너의 하늘을 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며, 이랑을 돋우고 의미를 심는 시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시를 읽으며 나의 삶도 너저분한 모습이 되지 않도록 생활을 널브러뜨리지 않고, 정돈하여 어딘가 예쁜 이야기로 기필코 만들고 만들어내겠다 다짐했다. 언제나 오늘부터 잘 살아내자고 다짐하며 겨울에 발을 내디뎠다.




노란 은행잎이 가을의 흔적으로 고운 줄 알았는데, 겨울이 오고 있는 증거였던 것 같다. 벌써 입동인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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