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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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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20. 2023

시를 돌려 놓는 시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일 때,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시 쓰기였다. 작은 대회에 나가 몇 번 입상을 한 적도 있었지만,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탓에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 아주 가끔 짧게 시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수 해동안 하지 않았다. 삶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동안 쓴 시를 모아 놓지도 않았다. 시에 관해서는 절필에 가까웠다.


얼마 전부터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문장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여 이따금 시의 형태로 끝맺음을 하려고 둔 것들을 꺼내 틈틈이 문장을 만들고, 운율을 붙이고 있다. 배운 적 없는 시 쓰기여서 입에서 높낮이가 느껴지고, 말소리와 뜻이 돌부리처럼 혀를 걸지 않는 말의 배치를 찾으려고 하면서 문장을 늘려간다.


시를 쓰며, 시가 왜 내게서 말랐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는 일이 바빴기 때문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바삐 사는 중에도 직업으로서 학문하기 위해서 쓰는 글 말고도 적지 않은 메모와 그리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에세이를 수 편 썼다. 오직 시를 쓰는 일만을 멀리했을 뿐이었다. 이유에 대한 생각은 '불안'에 닿았다. 불안하게 사는 동안 말에서 운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유 같았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가끔씩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마음이 불안했다. 새로운 생각을 더디게 불러오고, 또 부르지 못하기도 하는 머리와 문장을 불러오지 못하는 손을 원망했다. 원망만 할 뿐 다행히 좌절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에 늘 빈자리가 없었다. 어두운 생각은 그 밀도가 높이 들어차 마음에서 소리는 빠르게 멀리로 전달되기만 했다. 소리의 파형이 정신을 울리고, 몸에 스밀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말에서 운율이 사라졌던 것이다.


한동안 서두르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높은 파고를 예견하게 할 만큼 삽시간에 커지기도 했지만, 뚫고 지나가야 할 바다에서 잠시 벗어나 해안으로 물러서 있으면서 파고를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지냈다. 마음을 돌보고,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생각하며 수 주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마음에서 이는 소리를 그저 통과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의 파형을 이해하고 마음을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불안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삶을 목적과 행위에 묶는 일이 될 것이니까. 그래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몇 편의 시를 틈날 때마다 썼고, 고치기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것은 마지막 연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몰라 단어와 문장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운율과 뜻을 찾는 일만 하고 있다. 그것마저 녹록지 않은 시간도 있다. 그러나 마음에 운율을 붙여 그 파형마저 기록하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평안함을 느낀다. 다시, 운율을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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