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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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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27. 2023

부서진 말을 돌려 놓으려고

처음 신춘문예에 시를 보내며

시를 두 곳에 나눠 보냈다. 신춘문예에 글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비 오는 새벽 마지막으로 시에 쓰인 말을 정리했다. 보내기 전에 낭송한 것을 녹음해서 한 번씩 들어보고, 몇 개의 음절을 수정하는 것으로 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마무리했다.


시에 쓴 감정과 생각을 더 조밀하게 엮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날씨와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내 상태가 시에 계속 영향을 주었다. 시를 처음 시작한 시점과 일단락 짓는 시점 사이에 차이가 너무 커졌다.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를 하나에 켜켜이 쌓는 것만 같아 마뜩잖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고치는 일을 멈추고 봉투에 넣어 우체국이 여는 시간에 맞춰 찾아가 시를 보냈다.



말이 의미를 맺지 못하고 부수어지는 순간, 혹은 증발해서 존재조차 희미해지는 순간에 대한 시를 썼다. 한 편의 시만 현재의 내 생활을 구성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에 대한 의미와 감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달리 썼다.


계속해서 쓰게 되는 것이 말이 비어 의미를 잃게 되는 사태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에 회의를 느끼고 난 후에 결국 약속 혹은 맹세의 효력이 너무나 약해 아직 오지 않은 날에 원하는 것을 불러오는 것이 결국 어려워졌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믿고 맹세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남은 날을 의미 있게 사는,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지금의 비관을 정리해야만 하기 때문에 말의 부서짐 혹은 언어의 불임에 대해서 유독 많이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지난밤 배신의 의미에 대해서 대화를 길게 나눴던 것도 말에 대해 갖고 있는 유사한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관계가 깨어지고, 관계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되고, 관계를 삶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공허하다 깨닫게 되고, 다시 관계를 중요한 자리에 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내는 과정에서 언어를 둘러싼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일이 결코 공허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의미를 맺지 못하고 부서진 말들이 널린 폐허를 정리하고 말을 앞세우며 삶을 재건하기 위하여 말을 다시 보려고 했다.



여전히 말이 부서지는 일에 대해서 충분하게 생각하고, 기록한 것 같지 않아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에 대하여 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내가 쓴 시가 평가받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언어의 불임에 대한 비관적 생각을 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이 생각하고, 또 쓰며 더 비관해야 봄이 오기 전에 언어로 다시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약간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그날이 덜 어렵게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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