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집을 옮깁니다. 6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학위를 마무리하고, 이 집을 떠나겠다고 다짐하고 이사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학위를 끝내지 못하고 옮기기로 했습니다. 결혼이 망가지고 지난 3년간 무기력과 우울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나태해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에 없이 꾸깃해지는 자신을 보면서도 달리 길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제 모습을 나태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방향을 잃었고, 걸을 힘도 없었습니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지난날과 같아 보이는 일상을 삼켰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났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공부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시간을 쌓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두려웠습니다. 사랑했던 공부에서 의욕, 희망 같은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공허했고, 공허가 무엇 하나 제대로 터 잡고 올릴 수 없는 폐허를 낳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살았습니다. 제 고통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전에 없이 많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제게 남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고통은 늦은 밤 넋두리 같은 것으로만 두고, 아침에는 다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체했습니다. 그 시간이 3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많이 지쳐버렸습니다.
꿈, 희망, 목표 같은 단어들은 그간의 제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 아니게 되어 있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머금은 단어들을 생각에 올리지 못했던 것이죠. 꿈을 위해 살아왔는데, 꿈과 같은 말을 잃었던 것입니다.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유난히 조용하고, 볕이 잘 드는 이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제 인생에서 가장 시끄럽고, 어두웠던 시간을 보낸 이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제 정말 끝내고 싶습니다. '망할'이랄까, '빌어먹을'이랄까 하는 기분으로 아침을 더는 맞이하지 않고 싶어 졌습니다. 힘들어도 소중했던 아침에 소홀해지지 않고 싶습니다. 너무 꾸깃해져서 전처럼 펼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구겨진 상태로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너무 긴 밤이었습니다. 아직도 밤인 것 같습니다.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빛이 아침을 깨우지 않더라도 저는 몸을 일으켜야 할 것 같습니다. 해가 들지 않는다고 밤으로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제가 너무 아깝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들을 겪은 집을 이제야 떠납니다.
다행히 맑을 거라고 합니다. 제대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