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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Aug 08. 2022

에세이라니_벌과 장마

습한 날씨는 사람 뿐만 아니라 벌도 짜증나게 한다.


덥다. 매일 30도가 넘는 무더위의 나날들이다. 장마가 가까워질 수록 습하기까지 해서 꿉꿉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겨울에 떠올리는 6월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상쾌한 계절이었는데, 진짜 6월은 가로로 내리는 장대비를 피하지 못해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어 축축하고 무거운 옷차림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그런 계절이다.



원래도 덥고 습한 기운을 싫어했는데, 올해는 더 싫어졌다. 요즘 나는 양봉을 배우고 있다. 30대, 여성, 서울, 직장인이 왜 양봉을 배우고 있느냐, 라고 하면 그건 너무 길어지니까 다른 이야기에서 풀기로 하고.



벌들은 비와 습기에 약하다. 벌집 안이 습해지면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고 질병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지면 벌들은 날개 짓을 열심히 해서 습기를 날린다. 그러다보니 습한 날의 벌들은 매우 예민하다. 가뜩이나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누가 자꾸 벌집을 열어서 쳐다보고, 꿀을 가져가려고 하면 나라도 당연히 기분 나쁠 거 같다.



2주 전 토요일도 매우 습했다. 그 날은 하필이면 꿀을 채밀하기로 한 날인데 날씨가 습해서 벌들이 아주 예민했다. 벌통을 열어 보는 건 꿀장을 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여왕벌은 무사히 있는지, 알은 제대로 낳고 있는지, 질병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내 벌통의 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여왕벌이 한번 도망갔던터라, 좀 오래 열어놓고 알을 찾고 있었는데,


“악!!!!”


갑자기 누가 내 왼쪽 발목을 총으로 쏜 느낌이었다. 아니 총이 아니라 침이겠지만. 1년 간 양봉장을 들락거리면서 단 한번도 쏘이지 않았던 나인데, 처음으로 꿀벌에게 쏘였다. 나를 쏜 벌은 대롱대롱 양말에 매달려 장렬하게 전사했다. 양말에 붙은 꿀벌을 떼어내고 잠시 양봉장에서 나와 약을 먹었다. 벌에 쏘이면 이런 기분이구나, 생각보다 꽤 아팠다. 쏘였을 때 따끔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목이 계속 후끈 거리는 느낌. 선생님이 주신 약을 먹고 다시 양봉장으로 돌아갔다. 그간 다른 사람들도 다 쏘였지만 30분쯤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을 봤던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양봉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겨우 겨우 알과 여왕벌을 찾고 꿀장도 몇 개 뺐을 때 쯤,


아아아악!!!!!!!!!!!!!


나는 벌들의 철천지 원수가 된걸까. 한번에 3방을 쏘였다. 오른 발에 2방, 왼발에 1방. 결국 사이좋게 양쪽 발목에 2방씩 쏘였다. 발목이 후끈거리는 것보다 놀라서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양봉장에서 멀리 멀리 도망쳐 일단 방충복을 벗고, 놀란 기운을 삭혔다. 진짜 철천지 원수가 된게 맞는지 꽤 멀리까지 왔는데도 꾸역꾸역 따라 날아온 벌이 있었다. 방충복으로 훠이 훠이 멀리 내쫓는데 정말 눈물이 찔끔 났다. 그간 열심히 돌봐줬는데 너네 나한테 왜그러니.



내가 양봉장으로 돌아오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이 내 벌통을 닫고 마무리를 해주었다.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나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약을 처방 받고 집으로 와서 주말 내도록 그 핑계로 푹 쉬었다. 사실 놀란 것 외에는 발목이 붓지도 않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금을 보내고 다시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발목이 너무 간지러웠다. 집에 모기라도 있었나, 손으로 발목을 벅벅 긁으며 일어났는데, 양쪽 발목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곳의 시작점은 바로 일주일 전 벌에게 쏘인 그 곳. 미친듯한 가려움과 함께 발등과 발목이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망했다.



바로 다시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은 드물게 잠복기를 가지다가 염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전날 술을 먹었냐고 물었다. 네, 좀 마셨습니다 .. 금요일이었으니까요. 벌침 알레르기가 잠복기를 가지고 조그맣게 숨어있었는데 술이 들어가며 그것을 염증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었다.



염증은 주말 내 발등으로 퍼져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부풀어 올랐다. 발등 반만 슬리퍼를 걸치고 3일 째 병원을 가서 주사를 맞고 있다. 매일 병원을 가야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연차도 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마침 이렇게 태풍처럼 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에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다들 걱정은 해주는데 부러워하고, 나 역시 아픈 게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다. 나를 쏜 꿀벌은 알고 쐈을까. 자신의 벌침이 비 장마 기간에는 잠복기로 지내다가 장마 기간에 발병 할 거라는 걸.



장마 기간 신발과 바지가 축축 젖으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건 꽤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날 꿀도 꽤 많이 가져왔다. 내가 가져온 꿀과 장마 기간 연차에 대한 대가가 벌침 알레르기와 염증이라면, 꽤 주고 받을 만 하다. 역시, 이래서 내가 꿀벌을 싫어할 수가 없다. 물론, 습한 날씨는 여전히 싫다.



** 이 글은 출판사 마저에서 진행하는 <에세이라니> 글 모임에 참석하여 쓴 글입니다.

<에세이라니> 글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그 때 그 때 다른 주제를 나누고,

각자 글을 쓰는 모임으로, 이 모임에서 다같이 쓴 글은 추후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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