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완 Jul 13. 2022

30대 직장인은 양봉을 어디서 배워야 할까?

전문양봉인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양봉을 배워야지! 라는 나의 마음은 정말 하염없이 가볍고 얕았다. 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만큼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마치 텃밭에서 직접 농작물을 키워 수확을 하면 야채들이 더 맛있듯이, 내가 꿀벌을 키워 얻은 꿀은 더 맛있고, 그 꿀로 만든 술은 더 맛있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신이나서 양봉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내가 정보를 찾기 시작한 건 2월. 꽃이 피는 봄부터가 양봉은 성수기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양봉 수업에 대한 정보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생각보다 수업이 꽤 있고 심지어 무료 수업도 있어서 감탄하고 둘러보기도 잠시, 모두 다 포기해야했다. 수업이 올라오는 대부분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이었고, 전문 양봉인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라 평일 낮에 예정되어있어 나 같은 직장인은 들을 수 없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양봉 수업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체험 수업을 해보아야, 귀농을 할지 양봉인이 될 지도 결정할텐데. 전문 양봉인 양성 수업밖에 없으니 더 접근하기가 어렵잖아!! 하며 분노에 차서 포기하려던 찰나, 한 곳을 발견했다. 바로 소셜벤처 회사인 ‘어반비즈 서울’. 서울 시내 곳곳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곳으로, 딱 나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한달 체험 양봉 수업이 있어서 바로 신청을 했다. 수업 가격이 싼 편은 아니었지만 유일한 곳이었으니 고민 할 필요는 없었다.



양봉 수업의 시작은 4월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한달 넘게 있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미 내 마음은 양봉장에 가있던 터라 그 한달이 정말 지루하게 느껴졌다. 마침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외출이 줄어들고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던 시기라 더 그렇기도 했고.



그리고 드디어 꽃피는 4월, 첫 양봉 수업이 경기도 화전 양봉장에서 열렸다. 코로나 이전에는 서울 시내 호텔 옥상에 있는 도시양봉장에서 수업을 했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의 호텔 출입금지가 되면서 수업 장소가 화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집에서 한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긴 했지만 양봉장이 숲으로 둘러쌓인 곳에 있어서 마치 소풍가는 느낌으로 들떴다. 그리고 양봉장에 들어서자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하지만 설레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위이이이이잉


당연한 말이지만,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즈막하게 펼쳐진 벌통들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모기 말고 내 귀 주변을 이렇게 윙윙대며 날아다니던 존재가 있었던가. 위이이잉 거리며 날아다니는 수십만 마리의 벌들의 모습에 처음엔 살짝 겁을 먹었다.


하지만 곧 수업이 시작되고, 방충복과 장갑을 받자 금세 겁을 잊고 나는 당당해졌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방충복을 뚫고도 벌은 들어오고, 쏘이기도 한다. 하지만 첫 수업에 그것까지 알리가 있나. 방충복만 입었는데도 완벽한 무장이 된 느낌으로 성큼성큼 벌집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벌통을 하나씩 받고, 뚜껑을 열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무단침입자의 손길에 수많은 벌들이 날아올랐다. 4월은 아까시 꽃이 한창 피어서 꿀이 많고, 그만큼 벌들도 많은 시기이다. 한 통에만 2만여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 2만 마리가 무단침입자인 나 때문에 위이이잉 거렸다. 누군가는 날아올라 나를 위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경쓰지 않는 척 벌집에 붙어서 하던 일을 하기도 했다. 와글와글 벌들이 붙어있는 소비장*을 빼내서 자세하게 벌과, 알과 애벌레들을 들여다본다. 분명 나는 벌레를 싫어했던 사람인데, 꿀벌 한마리 한마리가 꼼지락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타고난 걸까.



약 한시간 정도 벌통을 살펴보고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과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양봉장을 나오는데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벌들이 꼬물거리는 모습이 아른거리고, 위이이잉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이명 같은 것이 아니라, 벌들이 떼로 날아다니는 소리가 마치 ASMR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역시 타고난걸까, 나. 이대로 양봉왕이 되는 걸까. 새로운 취미를 넘은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빨리 다음주가 되어서 또 벌을 보러 오고 싶다, 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려, 그날도 어쩔 수 없이 미드를 마셨다.



*소비장 : 벌들이 집을 지어 꿀과 알을 채울 수 있도록 사람이 인위적으로 넣어주는 벌집 판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양봉이나 배워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