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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

필터 없는 삶을 위하여

by 행복을 그리다

창문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똑같은 풍경을 두고도 저마다 다른 세상을 보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유리에는 '성공'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아침이면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수십 번 되뇌었다. 성공해야 한다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승진이라는 말은 일상의 모든 순간을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는 휴식마저 사치로 만들어버렸다.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도, 책상 위에 고요히 내려앉은 먼지도 모두 무의미했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창틀을 붙잡고 일어서려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제야 보였다. '건강'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창이. 그 창으로 보니 세상이 달랐다. 아침에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짧은 산책이 보석처럼 빛났다. 주말 공원에서 나를 반기는 작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었다.


불면증으로 뒤척이던 밤들도 있었다. 새벽 네 시, 어둠 속에서 '위로'라는 이름의 창을 더듬었다. 그 창 너머로는 촛불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 그것은 기도였고, 깊은 침묵이었고, 나를 향한 위로였다.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보는 모든 창은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든 틀이라는 것을. 욕망이라는 김이 서려 뿌옇게 된 유리창도, 불안이라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창문도, 모두 우리가 덧댄 것이라는 걸. 맑은 아침처럼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두기로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쳐도 좋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어깨를 데워도 좋다.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 기쁨과 고통이 뒤섞인 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창틀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바라보던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섰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진짜 세상은 내가 만든 모든 창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


다시 천천히 눈을 뜬다. 이제는 더 이상 창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바라본다. 딸아이의 등굣길에 스치는 바람도, 길고양이의 간간한 울음소리도, 밤하늘의 희미한 별빛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가장 소소한,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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