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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구매의사결정 과정

소유의 무게

by 행복을 그리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오랫동안 고민하는 편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합리적 구매의사결정 과정"이 떠오른다. 값비싼 것을 구입하기 전에 대안을 꼼꼼히 따져보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꼭 필요한 것만을 얻으려는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내게는 지나친 신중함과 불안함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맥북 프로를 구입하기까지 무려 두 달을 고민했다. 최신 사양의 윈도우 PC와 맥북 중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적합할지 글로 써가며 따져보고,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결국 맥북을 선택했지만, 결정을 내린 뒤에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앱, 외장하드, 기타 액세서리까지 이것저것 사들이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문득 떠올랐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그 말씀이, 나는 어쩌면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새 컴퓨터가 주는 편리함은 분명 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휩싸인다. 꼭 새 차를 사고 나면 틴팅이나 세차 용품을 챙기느라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째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고, 잠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오래전에 본 영화 ‘부시맨’이 생각났다. 기억이 맞다면, 부시맨은 문명과 기술의 편리함 대신 단순하고 얽매이지 않는 전통적인 삶을 선택했었다. 나 역시 컴퓨터를 사기 전에는 이런저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쓰고, 동시에 스스로 고민거리와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맥북 자체는 정말 좋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왜 이 만족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준비하면서 나를 힘들게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마치 운동을 시작할 때 필요한 장비부터 완벽한 자세까지 챙기며 전문가처럼 준비하느라 지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왜 이렇게 모든 걸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는 걸까. 물건을 사고 나서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으니, 쇼핑은 늘 어렵고 즐겁지가 않다. 사실 조금 더 편하게, 가볍게 시작해 보면 되는 일인데,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괴롭힌다.


이제는 후회와 조급증을 내려놓아야겠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할 순 없더라도, 적어도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대안 평가니 합리적 선택이니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삶의 무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구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본다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그것을 평가하거나 후회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번에 새로 내게 온 맥북에 감사하며, 아끼고 잘 사용해 보련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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