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맛이야!

엄마표 김치찌개

by 우아옹


얼마 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캐리비안 베이를 강행했다.

다음날 비루한 내 몸은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매일 하던 미라클모닝도 잊고 7시까지 잠을 잤다.

헤롱헤롱한 정신으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다시 침대에 기절해 버렸다.

2시간 알람을 해놓았지만 배꼽시계가 울리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밍기적밍기적 밥솥까지 갔지만 밥이 없다.

배는 고프지만 쌀을 씻기 싫어 배가 안고프다.

서글펐다.

갑자기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사는 엄마지만 이럴 땐 연락하기가 미안하다.


에잇! 나는 배달의 민족이지 않는가!

난생처음 혼자서 배달음식을 시켰다.

'띵동, 16분 만에 음식이 배달되었습니다.'

허기짐을 달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분명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다.

돼지고기도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맛있게 먹었지만 반은 남겼다.

배달음식 양이 혼자 먹기엔 많다고 위로했지만 남긴걸 냉장고에 넣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직도 목소리는 인어공주다.

몸에는 곰들이 덕지덕지 올라타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하며 가정주부 역할을 묵묵히 수행 중에 전화가 왔다.

"어디니? 엄마 너네 집 간다~"

엄마가 오자마자 나의 가정주부 놀이는 멈췄다.


"목소리도 안 나오는 얘가 무슨 설거지야! 앉아있어"

이럴 땐 말 잘 듣는 딸이다.

슬금슬금 안마의자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

찌이잉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깐 눈을 감았다.

조용해진 안마의자다.

평소엔 길게만 느껴지던 20분이 벌써 끝났나 싶어 재가동 버튼을 누르며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내 몸 위에는 두꺼운 이불이 덮여있다.

몸에서 삐질삐질 땀이 나는 이유는 아파서가 아니라 이불 때문이었다.

한여름에도 배에 솜이불을 덮어주던 엄마의 소행이 분명하다.


'엇 근데 이것은 무슨 냄새?'

또 땀나게 했다고 따질 틈도 없이 향긋한 김치찌개 향기가 내 코를 감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 냄새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쌀은 최고급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도정 날짜만 보고 사는 딸내미 집의 쌀이 불만인 엄마는 찹쌀을 넣어 밥을 했을 것이다.

윤기 있는 흰밥과 새빨간 김치찌개가 식탁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

없던 식욕이 마구 샘솟았다.

"그래 이 맛이야!"




수능을 보러 가기 전 아침식사

공무원이 되어 첫 출근할 때 아침식사

신혼여행 다녀와서 엄마에게 제일 먼저 해달라고 한 음식

아이를 출산하고 정말로 먹고 싶었던 매운 김치찌개

생각해 보니 나의 중요한 순간에는 케이크보다 김치찌개가 함께했다.


어릴 적 엄마표 김치찌개에는 그 흔한 돼지고기도 들어가지 않았다.

뽀얀 두부가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그냥 김치 하나 딸랑 들어간 김치찌개일 때가 더 많았다.

우리 집 형편에 고기를 샀으면 구워주는 대접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김치찌개에 고기를 넣으면 반칙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오리지널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찰진 흰밥에 김치찌개를 하나 올려놓고 흰 밥그릇을 빨갛게 만들어버리는 그 황홀함은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엄마의 김치찌개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 엄마'의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분명 엄마처럼 만들었는데 삼 남매의 '우리 엄마 음식'은 아쉽게도 김치찌개가 아닌 듯하다.



엄마표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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