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심심할 때면 만지작만지작 나름 재미있다.
걸을 때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괜찮다.
'앗 조금 아프네~'
참을만했던 불편이 점점 고통으로 다가온다.
양쪽 새끼발가락 밑에 다정하게 같이 나온 티눈.
몇 달을 함께했지만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아픔에 헤어질 결심을 하고 피부과로 달려갔다.
"선생님, 티눈 제거 많이 아픈가요?"
"마취 주사만 조금 아파요"
한쪽 발에 주사가 들어가는 순간 주삿바늘을 타고 들어오는 액체를 느끼며 고통이 찾아왔다.
"으~악!"
출산 때 무통 주사도 꾹 참았던 나다.
주사가 아파봐야 출산보다 더 하겠어하는 순간 들어온 주삿바늘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했다.
'맙소사'
더군다나 덜덜 떨며 기다리는 한쪽 발이 남아있다.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또 한 번의 괴성과 함께 양쪽 발에 커다란 싱크홀이 만들어졌다.
"신발을 편한 거로 신으세요. 재발할 수도 있으니"
"재. 발."
제발 재발만은 막아야 한다.
절대 다시는 티눈과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이곳에 다시 엎드려있기 싫다.
"발 볼이 넓어요, 그래서 편한 신발이 없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하소연했다.
의사 선생님은 본인의 발도 길이, 넓이가 똑같은 발이라는 고백과 함께 편한 운동화를 추천해 줬다.
엎드려 꼭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고 의사 선생님의 발을 내려다봤다.
묘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내 발로 말할 거 같으면.
구두는 기성 제품이 없어 맞춤해야 하고,
운동화는 아동화로 득템 할 기회가 많아 신랑에게 기쁨을 주는 219cm이다.
그에 비해 볼은 마음 넓게 넓디넓다.
거기다 짧은 발가락의 콜라보로 완벽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발이다.
이런 발에게 편한 신발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40년 넘게 이렇게 살다 보니 불편한 신발은 어느새 익숙하다.
불편한 신발은 당연하게 내 발이 견뎌야 하는 운명이다.
참고 참았던 발이 못난이 티눈 꽃으로 얘기한다.
불편하다고, 힘들다고.
익숙함에 업신여겼던 발에게 불편함은 당연하지 않았던 거라고 사과하고 싶다.
다시는 못난이 티눈 꽃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발에게 편안한 신발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