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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28. 2023

누가 내 신발끈 묶어줬어?

지난주 토요일, 다친 발목 진료가 아침 9시로 잡혀있어 마음이 분주했다. 가족들을 위해 휘리릭 유부초밥 몇 개 만들어내고 서둘러 병원 갈 채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반깁스 하지 않은 오른발에는 가장 편한 흰색 운동화를 신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운동화를 빨아놓고 끈을 묶지 않은 것을 기억해 내곤 좌절했다. '아, 그 운동화 말고는 깨끗한 운동화가 없는데.' 불편한 다른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미리 체크하지 못했던 허술한 나를 자책하며 신발장에 들어서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큰 소리로 가족들을 소집했다. "엄마 운동화 끈 묶어준 사람 누구???" 물어보면서도 우리 집에 운동화 끈을 묶어줄 만한 인물이 없다고 확신했다. 남편과 아들은 자신들은 아니라며 미련 없이 다시 유부초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딸이 시크하게 전했다. "이모가 묶어줬어."

내가 묶었으면 끈이 밖으로 튀어 나오고 난리였을거다





이모님을 처음 만난 건 재작년 가을. 9월이 되기 딱 3일 모자란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15분 거리의 회사에 다니며 2인 3각 게임 파트너처럼 아이들 양육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1시간 30분 거리의 근무지로 이동발령이 난 것이다. 매정한 회사는 이동 근무까지 단 3일간의 말미 주었다. 함께 발을 묶고 있던 끈이 끊어지며 우리가 함께 하던 게임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모님을 3일 만에 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 옆 단지에 사시는 이모님을 소개받았다. 남편을 보고도 첫눈에 반하지 않았건만, 이모님을 본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우리 사정을 들으시고는 본인 일처럼 안타까워하시며 힘써 돕겠다고 해주셨다. 따스한 눈빛을 쏟아내시는 이모님에게 그 자리에서 기대어 울 뻔했다.



남편은 멀리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더욱 레벨 업된 일과 육아는 심신을 지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화책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우렁각시가 우리 집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침에 사용한 그릇들이 씻겨져 있었다. 널브러져 있던 빨래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가스레인지가 깨끗하게 닦여 있고, 벽에 마구 튄 김치 자국도 말끔하게 닦여져 있었다. 이모님은 집안일은 일절 안 하시고 아이들만 봐주기로 하고 오신 분이셨다. 죄송하니 하지 마시라 해도 안 힘들다며 걱정 말라고 등을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힘드셨다고. 그때마다 나중에 본인 같은 애엄마를 도우며 살고 싶으셨다고.






어린 시절 운동화를 빨아주고 끈을 정성스레 묶어줬을 엄마가 떠올랐다.

그 시절 이후 내 운동화 끈을 한 땀 한 땀 묶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모님은 며칠 째 베란다 한편에서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끈 없는 운동화를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늘 정신없이 동동 거리는 애엄마도 함께 떠올리셨을 것이다. '다리도 다쳤는데 언제 저걸 묶겠어.' 하시며 기꺼이 손을 내미셨을 것이다.


나의 힘듦을, 아픔을, 분주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온전히 이해해 주는 한 사람.

일과 양육의 기로에 서서 비틀 거리는 나를 부축해 다시 걷게 주는 사람. 피가 섞이지 않아도 완벽한 가족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리 이모님.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생각해 본다.

타인의 신발끈을 기꺼이 묶어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진짜 신발끈뿐 아니라 힘에 겨워 풀리고 땅에 끌려 더러워진 다른 이의 마음 고이 묶어줄 수 있는 그사람.  작은 정성으로 누군가의 하루에 희미한 불빛이라도 더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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