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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옹 Nov 04. 2023

사춘기 종료선언했는데 자동응답기?

정확히 '네!'만 다섯 번 하고 통신 끝

지난 연휴에 칼퇴를 꿈꿨으나 결국 야근을 했다.

 재래시장 구경에 나선 가족들과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고 꿀호떡도 먹고 피날레로 오락실까지 한판 하니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차를 선택한 큰아들과 딸내미.

아이브에 빠진 딸내미는 타자마자 노래를 선곡하며 흥얼흥얼 거린다.

딸내미의 노래가 소음으로 들리는 큰아들은 자주 짜증을 내곤 했다.

또 한바탕 소란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넌 이 노래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엉. 오빠도 좋지"

약간의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큰아들이 내뱉은 말에 웃음이 났다.

"엄마, 난 이제 사춘기가 끝난 거 같아"

(응? 아들아 너 사춘기 있었니?)

그 진지한 표정과 말투라니 마음속으로는 배꼽을 잡고 웃음이 났지만 진지한 큰아들에게 물었다.

"사춘기가 끝난걸 어떻게 알았어?"

"어 요즘은 기분이 좋아. 난 사춘기가 2번 있었어. 3학년때랑 5학년인 지금. 3학년때는 나의 흑역사였지"

"그랬구나! 사춘기가 끝난 걸 축하해!"




"모여라! 삼 남매!"

일요일 저녁 이 구호면 본인의 다이어리를 들고 우르르 달려온다.

주일간 다이어리를 잘 쓰면 뽑기 한판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엄마가 책 읽어주기'가 나오면 좋아하던 삼 남매는 이제 '책사주기'로 바꾸자며 협상이 들어온다.

약속은 약속이다.

책을 읽어주려 큰아이방에 들어가 앉으니 둥이들이 자기들도 듣겠다며 쫓아온다.

매몰차게 안된다고 외치던 큰아들이 조금 뒤

"입장권을 내"하면서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다.

입장권은 하이파이브.

둥이들이 달려오니 피하면서 낄낄거린다.

결국 사이좋게 셋다 누워서 오랜만에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평화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 읽나오려는데 큰아들이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이것도 기분이 좋네~ 엄마가 오랜만에 책을 읽어주니"


그래서 사춘기를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면 좋으련만 그런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은 이렇다.

"학교 잘 다녀왔어?"

"네"

"집으로 갈 거니?"

"네"

"집에 간식 있으니깐 꼭 챙겨 먹어!"

"네"

"차 조심하고"

"네"

"이따가 보자~"

"네!"

건조기를 돌린 것도 아닌데 어쩜 이리 드라이한 지.

그래도 사춘기 종료 선언을 했으니 믿어보고자 한다.


"숙제 다했는데 게임해도 될까요?" 할 때만 애정 가득한 말투로 방긋 웃는  너.

엄마 마음 사르르 녹게 하는  너.

반칙이다.

뽀로로사탕 하나 얻어먹겠다고 예쁘니깐 한번만 주세요 하던 큰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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