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0.4° 낮아요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네요. 독감도 유행인데 미세먼지까지. 아프기 좋은 계절입니다.
조금 나태해지려는 것 같아서 어제는 꼭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야지 다짐하고 집에 왔습니다. 냉동고에 돼지고기 목살은 꼭 채워 넣는 편인데, 구워도 먹고 찌개로도 먹고 찜으로도 먹습니다. 다 맛있지만 수고하는 시간이 적고 실패 확률이 낮은 찌개류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굽는 건 냄새가 잘 안 빠지고 찜은 시간이 배로 걸리거든요. 마침 팩으로 포장된 스팸이 있어서 같이 넣고 끓여 식사 한 끼를 해치웠습니다.
일찍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었지요. 안 그래도 그제 『잠 좀 잤으면 좋겠다』라는 수면 관련 책을 마저 다 읽었는데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아서 정말 진지하게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잠들기 전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매번 실패했었습니다. 하다 못해 노래라도 틀고 영상이라도 틀어놔야 잠을 잘 수 있었는데 그 책에서 자기 전에 독서를 해 보라고 하더라구요. 책을 읽다가 졸리면 그때 책을 덮고 자면 된다고.
어제 처음으로 시도해 봤습니다. 알람은 미리 설정해 두고, 큰 불은 끄고 작은 불만 켜 둔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고개를 꾸벅하는 순간 책을 덮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불도 끄구요. 그대로 숙면해서 새벽에 잠깐 깼다가 다시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자다가 중간에 깨는 것이 나쁜 것이라 생각했는데 책에서는 그렇게 분리 수면이 이루어지는 것이 특별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랜만에 말끔하게 잘 잤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어제 읽은 책은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라는 기도 시집이었습니다. 국내외의 유명인들 또는 작자 미상의 기도를 엮어서 만든 책이었는데, 아는 시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낯선 시였습니다. 쭉 읽다가 대학생 때 졸업 논문으로 썼던 김현승 시인의 시가 나와 반갑기도 했었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내 기도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의 결이 비슷해서일까요. 감탄하며 곱씹게 되는 내용도 있고 조금 어려워 쉽게 책장을 넘기게 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기 않기를. 똑같은 문장은 아니지만 이러한 뉘앙스로 쓰인 문장이 기억이 남습니다. 최근 들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사랑할 수 있나? 정말 진심으로?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추악한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하나? 선으로 그어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고 있는 '사랑'은 나를 사랑하듯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내 평생의 숙명으로 남게 될 명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수렁에 빠지지 않고 아슬아슬한 통나무 다리를 건너갈 수 있는 세상. 올바르고 맑은 이성을 가지고 사는 한편, 측은지심과 인애도 가지고 살아야 한다니. 왼손으로 세모를 그리고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세모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좀 엉망이고, 좀 찌그러지더라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삶 말입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것대로 문제겠지요. 이렇게나 혼란하고 두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이야 흘러가는 대로 편안하게 사는 것 같겠지만 언젠가는 컨베이어벨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낙하하고 말겠죠. 끊임없이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며 거슬러 올라가야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생은 수고로운 여정인 듯합니다.
주변에 함께 괴로워해 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진 머리로 생각을 하기에, 선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기에, 그리고 나아갈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곳으로 향하기 위한 의지를 다져야 하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