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카톡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권유에 한 번 깔아만 봤다가 카톡에 엄마가 뜨자마자 연락 온 지인들의 카톡폭탄에 뜨악하여 바로 삭제하고 말았다. 반대로 아빠는 카톡매니아다. 하루종일 카톡을 붙잡고 누군가에게 쉴 틈 없이 무언가를 보내는 중이다. 얼마 전엔 간단한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했다 깨어난 상황에서 어지럽다고 비틀대면서도 카톡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왜 카톡포비아가 됐는지 바로 이해해버렸다.
두 딸들은 아빠의 카톡사랑에 부정적인 반응이라 아빠는 최대한 자제한 횟수로 가끔 소식을 전하는데 자신의 셀카 혹은 여행사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다. "어디 여행 왔어요" "잘 생겼지요?"(아빠는 소문난 자기애폭발인)같은 멘트와 함께. 그럼 나는 따봉 이모티콘이나 잘 나왔다, 조심히 다녀오시라 등의 모범답안으로 답한다.
반면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엄마는 편지같은 문자로 안부를 전한다. 첫인사와 끝인사, 본론이 적절히 배치돼 있는(핵심은 연락 좀 하고 살라는 것) 길고 짧은 문자를 받으면 쉽게 답신을 할 수 없어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답을 차일피일 미루고 며칠 뒤에 전화로 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카톡이든 문자든 그게 그건데도 문자를 대하는 마음이 훨씬 무겁다.
"엄마도 카톡 좀 하면 안돼?"
"카톡이나 문자나 뭐 큰 차이 있어?"
"카톡이 좀 더 답하기 쉽단 말이야."
"카톡이든 문자든 마음의 문제지. 마음만 있음 문자가 어려울까."
"맞아. 그건 맞는 말이야."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는 우겨봤자이니 바로 퇴각. 수단은 핑계일 뿐 마음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 못된 진실이다.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남보다 대하기 쉽고 편한 사람들이니까 노력에 힘을 덜 쓰게 되는 것이다. 노력의 여백이 있어도 이해해줄거라는 믿음. 그 쓸데없는 낙천적임이 남보다 더 못한 사이로도, 서로에게 가장 상처주는 사이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을 위한 의지는 더디고 늦다.
쉬운 것들에 자꾸 노출되고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것들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아진다. 어려운 것들은 대부분 노력해야 얻을 수 있으니까 수고로움을 감수하기 귀찮은 마음이 그것들을 자꾸만 저쪽으로 혹은 내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밀어내버리는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올해 우리반에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 중 한 명은 특히 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내게 무례하지'란 마음이 들면 온몸에 점점 분노게이지가 팡팡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소리치고 싶다. "너 왜 이렇게 내게 무례하니?"
나는 종종 상상한다. 내가 이 아이에게 온갖 못된 말을 꼭꼭 씹어 내뱉으며 무력으로 눌러버리는 막돼먹은 그림을. 혹은 "나한테 그럴거면 학교 나오지마. 아님 전학가 버리든가."라고 유치하고 나쁘게 말하는 장면도.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내게 상처준 만큼 고스란히 갚아줄 수 있을까 복수혈전을 꿈꾼 적도 있다.(이런 저, 교사자격이 있나요?)
이 아이를 미워하는 일은 요즘의 내게 너무나도 쉽다. 좋은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소심하고 편협한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굳이 이 아이를 좋아하고 싶지 않다. '얘도 다 이유가 있다'는 너그러운 이해를 저쪽으로 던져두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그럼에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건 내게 주어진 교사라는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최선을 다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자격과 인간적인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하지만 마음 먹기 쉬운 것들을 쉽게 행동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이것이 결국 우리의 존엄을, 이기적이게는 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 믿어서이다. 나는 너와 달리 쉬운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우월감의 표현이라 해도, 어린 아이와 유치한 싸움 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듣고 본 것들로, 내게 쥐어진 것들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일은 너무도 쉽다. 표면적인 것들로 평가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어렵지만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들을 위해 마음쓰는 일은 참 힘들고 고되다. 세상과 삶을 좋게 만드는 것들은 그래서 대부분 어렵고 나쁜 것들은 참 쉬워서 굳이 갖고 싶지 않아도 방심하다 보면 내 곁에 와 있다.
요즘 매일 새롭게 다짐한다. 쉬운 것들에 지지 말자. 얼마 전 친구와 카톡하며 했던 이야기. "요즘 인간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점점 더 곳곳에 깔려 있는데 그런 일들에 회의감 느끼고 좌절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일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나는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삶과 인간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게 이기는 길이라고 매번 다짐하고 있어. 그게 어렵지만 삶을 살게 하는 이유인 것 같고."
지지 말아야지. 엄마에게도 타이밍 놓치지 말고 꼬박꼬박 문자해야지. 그 아이와 내가 함께하는 시간동안 만큼은 서로 다치지 않고 잘 사는 길을 계속 고민해야지. 무너지고 일어서는 일을 반복하는 게 삶이니까 오늘은 실패해도 내일의 나에게 또 기회를 주면 이기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