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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경 Sep 10. 2019

용기의 일상

산책은 나의 힘

안녕하세요.  ‘용기(容器, 勇氣, 蛹期...)’ 작업을 하고 있는 김호경 작가입니다.

용기 작업이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용기(勇氣)의 기(氣)는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생명 에너지’이며, 바람, 숨, 우리 속에서 움직이는 생기이기에 ‘용기’를 ‘생명력(에너지) 있게 삶을 사는 것!’으로 재정의 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의미 있는 추상적 단어들을 재정의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현재 좋은 기운(Good Energy)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좋은 기운은 사랑(Love Energy)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면서 전시 경험도 쌓이고 있었다. ‘용기(勇氣, 容器, 蛹期...)’작업과 함께 틈틈이 책 읽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림 그리고, 읽고, 걷고, 수업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어려서부터 즐겁게 미술놀이를 하며 자랐듯이 나를 만나는 아이들도 창의적인 미술놀이를 하며 좋은 추억도 쌓고 즐겁게 자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자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삶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뿌리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생각하기에 석사 논문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쉽지 않지만, 작업과 교육을 같이 해왔다. 나 자신의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작업 못지않게 교육에 대한 열정도 크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기에 교육 상담도 많이 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대안학교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대안학교가 정말 대안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들어 실행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레슨 등...)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무렵 가르치던 아이들이 조기 유학을 많이 갔다. 그래서 나는 용기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점점 더 소그룹 레슨만 조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아이들 교육을 하며 아이들의 잠재력이 개발되어도 사회나 부모님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미술태교를 연구하게 된다. 한 생명을 잉태하는 기간이 부모 자신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어야  좋은 양육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변하면 사회도 변하지 않겠는가? 즐겁게 놀며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의 권리를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누구라도 상황에 맞춰서 혼자 몰입하는 시기를 갖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균형 잡힌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매일 산책을 하였다. 걷는다는 것은 땅과 접속하면서 땅의 생명력을 받아들이기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맨발로도 걸으면서 흙을 느끼면 내가 지구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또 생활의 일부분으로 산의 사계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산책을 좋아해서 작업실을 산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집 옆에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작업과 함께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자체가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산책 마니아가 되었다.      



자연은 볼 때마다 기쁨을 주었다. 우리가 자연이기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동물과 식물은 서로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시며 협력 관계를 이룬다. 인간은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우리가 숲 속에 들어가면 숨 쉬는 것부터가 편안해진다. 나무를 보면 친구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서로에게 이로운 공생관계를 이루기 때문 아닐까?     

산은 우리가 그런 것처럼 정말 매일 하루가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생명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리라. 각 계절마다 주는 독특한 느낌들이 있다. 여름 산은 짙은 초록이 주는 매력이 있다. 더운 날에 숲 속에 들어가거나 계곡 물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시원한 바람 한줄기 지나가며 땀을 식혀주며 지상천국을 만들어준다. 가을산은 온갖 색채로 가득 차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빨강, 노랑, 주홍빛과 가지각색의 갈색들. 그 색이 주는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된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그렇게 화려하던 잎들이 떨어지면서 산도 조용히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그때는 나도 봄에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씨를 뿌리고 준비를 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산의 땅은 더욱 푹신해지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푹신한 흙을 밟는 내 발의 기쁨이 심장까지 전해지고 내 입술까지 올라와 미소 짓게 한다. 태곳적 지구가 형성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자연의 모든 것이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땅도 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어떤 소리였을지 궁금하다. 걷다 보면 어디선가 물소리도 들린다. 나무를 만지면 따듯함이 느껴진다. 나무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그림도 그려본다. 계절마다 미세한 공기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새들도 봄이 되면 더욱 맑게 재잘거린다. 이쪽에서 새가 지저귀면 저쪽에 있는 새가 대답을 한다. 새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다. 나뭇가지만 앙상하던 곳에서 꽃봉오리가 맺히고 어느새 꽃망울을 터트린다. 여전히 삭막한 주변에 울긋불긋 핑크빛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진달래가 등장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 화려하게 봄소식을 알리고는 미련 없이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싹을 틔운 잎들이 뻥 뚫렸던 시야에 연두 빛 커튼을 친다. 더욱 신이 난 나의 발은 울퉁불퉁 꼬부랑길도 한걸음에 내달아 좀 더 산속 깊이 들어간다. 산에는 사람 길과 바람 길이 따로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혹시 바람 길로 잘못 접어들면 차원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산은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이 산길이 역사의 증인이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산책을 즐기다 보니 책 속에서도 산책 마니아들을 만나게 된다. 산책은 사색을 필요로 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필수 요소가 아니었을까 한다. 라파엘로의 걸작 중 하나인 ‘아테네 학당’은 과학자, 철학자, 사상가들이 토론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의 중앙에 손을 위로 향하고 있는 플라톤과 손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오는 장면이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산책을 즐긴 사람들은 많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외쳤던 홉스도 산책을 했다. 아인슈타인도 산책을 하다가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루소도, 니체도 모두 산책을 즐겼다. 물론 많은 예술가들도 산책을 즐겼다. 그림 그리고, 읽고, 산책하고, 아이들 가르치며 10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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