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지?

대부분 사람들 말을 잘 안 듣지만 형들 말은 잘 들어요

by 오류 정석헌

"너,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지?"

"네~ 저 잘 안 들어요."

"형들이 너 진짜 좋아하나 보다. 모두 너에게 한 마디씩 잔소리를 하는 거 보면."


내게는 위(胃) 대한 형들이 있다. 음식을 좋아해 정보를 나누고 공부하는 모임에서 만났다. 8년째 형들과 인연을 이어오며 가끔 만나 맛있는 수다를 나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오전 11시 코엑스 A2홀 앞에서 장정 넷이 모였다. 제주에서 올라온 제민형은 참가자로 이미 도착해 있었고 다음이 울산에서 올라온 경일 형이다. 이어서 준호형 마지막이 나였다.


"어제 여기 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어요."


<세계 주류 박람회>를 들어가기 전 제민형이 나를 보며 당부하듯 얘기했다. 제민형의 말에 얼마 전 대림 시장 사건이 떠올랐다. 대림 시장에서 태어나 두 번째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다. 첫 번째는 대학생 때 태어나 처음 위스키를 마셨을 때고 다음이 대림 시장이었다.


대림 시장 내 어느 중식당에서 바이주 (52도)와 함께했던 날, 나는 바이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맛있는 음식 많이 먹으려고 전날부터 굶었고 대림역에서 음식점까지 40분을 걸은 탓에 땀범벅이 된 상태였다. 음식이 나오기 전 제민형은 오늘 함께할 바이주를 차근차근 소개해주었다. 아담한 잔에 손 한마디 정도의 양을 귀엽게 따라주면서. 바이주의 향이 음식점 안을 가득 채웠다. 바이주는 3번 즐기는 술이다.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이렇게 마실 때 맛은 배가 되고 기분도 배가 된다고.


난 제민형의 충고를 어겼다. 아직 음식이 나오기 전이니 향을 음미하고 입술로 맛만 보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원샷을 했다. 빈 속에 51도 술을 연거푸 3잔 넘겼다. 바이주 앞에 무릎 꿇는 건 이미 뻔한 결과였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연거푸 7잔쯤 마셨을까, 깨어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석헌아, 니 오늘도 그래 마시면 안 된데이."


제민형 옆에 서 있던 경일형이 한마디 보태며 어깨로 나를 툭 밀었다. <세계 주류 박람회>에서 바닥에 눕는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된다며 제민형은 하동관으로 우릴 안내했다. 간단히 국밥 보통으로 위를 코팅하고 박람회 장으로 들어갔다.


박람회는 대성공이었다. 코엑스가 원래 이렇게 더웠었나, 사람들의 열기로 코엑스는 에어컨을 안 튼 것처럼 느껴졌다. 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민족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왼손엔 와인잔을, 오른손엔 위스키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 대형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 동호회에서 온 듯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 카메라를 양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 흡사 여기는 박람회가 아니라 시장 같기도 했다. 코엑스 천장이 높아서 망정이지 조금만 낮았으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


북적이는 박람회장을 벗어나 동대문으로 향했다. 한국인은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음식점은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찾아간 닭 한 마리 집은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대형 선풍기가 6대나 돌아갔지만 1도 시원하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원한 쌍화탕 찻집에 들어갔다. 우연히 발견한 찻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원함이 우리를 반겼다. 박람회에서 1시간 동안 흘린 땀과 점심 식사를 하며 더한 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붉게 물든 얼굴이 차츰 제 색을 찾을 때쯤 쌍화차가 나왔다. 쌍화차에 입을 갖다 대는 찰나 현욱형이 얘길 꺼낸다.


"석헌, 너 아까 보니까 3번 만에 씹어서 삼키던데. 좀 천천히 먹어봐."

"먹는 건 어쩔 수 없거든, 대신에 하루에 만보는 무조건 일처럼 걸으레이. 건강할 때 건강 지켜야지."

"형들이 너를 엄청 아끼나 보다 듣기 싫은 잔소리를 이리도 늘어놓는 걸 보니. 하하"


현욱형 다음은 경일형, 마지막은 준호형. 온통 내 걱정뿐이다.


다음에 형들 만나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현욱형, 오늘 아침부터 20번씩 씹어서 넘기기 시작했어요.'

'경일형, 매일 일하듯 걸을게요.'

'준호형, 대림 시장에서 매번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너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지?'

'네 맞아요 제민형. 사람들 말 잘 안 들어요. 그런데 형들 말은 잘 들어요. 형들이 저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니까요.'


내게는 위(胃) 대한 형들이 있다. 위도 크고 생각도 큰 형들이다. 다음엔 더 건강한 모습으로 형들을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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